사라져가는 가을... 비폭력대화(이하 엔브이씨, NVC) 완 스텝 연수를 마친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아직 그 배움의 마지막 날, 여러 분들과 함께 나누던 기린 에너지가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느낄 때, 그것을 상상할 때 나는 기쁘고, 내 안에는 충만한 기운이 그득해진다.
지난 주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3시간씩 12주 동안 NVC 연수에 참여하고 계신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탄성은 연수비를 거의 백만원의 반 정도로 부담해야 들을 수 있는(물론 장학금을 청할 수는 있지만...) 연수를 자부담 6만원에 듣고 계신다는 말씀에 와~ 서울은... 하는 생각과 함께 나왔다. 두 번째 탄성은 NVC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것을 들으며 나왔다. 어떤 상황을 주고 느낌을 찾아보라고 안내하는데, 느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생각 쪽으로 자꾸 가게 된다고 그래서 어렵다고 하셨다. 혹은 또 어떤 상황을 주고, 그 상황에서 바라는 것, 원하는 것 즉, 욕구need를 찾아보라고 하는데 강사가 칠판에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을 적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따지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욕구를 칠판에, 다 적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다. 그분이 말씀하신 두 가지 부분은 나 역시 배우면서 겪은 어려운 부분이었기에...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의 말의 듣고,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감정이 흩어질 때 생각이 가득 차서 어쩔 줄 모를 때, 길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는 부분들이기에...
머리나 생각이 몸보다 우월하고 그렇게 현실을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유능하다고 여겨지는 날들이 있었다. 요즘도 자꾸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전보다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몸을 관찰하려고 한다. 지금 내 얼굴을 좀 어떤지, 심장은 어떻게 뛰고 있는지, 아랫배는 경직되었는지, 가슴 부근은 저린지, 아픈지, 어깨는 무거운지, 뻐근한지... 내 시선을 들어 이마를 향하기보다 고개를 떨구어 몸 쪽으로 시선을 두면, 몸이 좀 어떤지 보는데 도움이 된다. 몸을 보면서 느낌 단어들을 떠올린다. 슬픈지, 슬픔이 가슴깨에서 배꼽깨로 내려가는지, 가슴깨에 머물러 있는지... 화는 가슴에서 위로 올라오고 있는지... 그 화가 밤톨만한지, 김장 배추 절이는 커다란 함지박만한지... 몸과 느낌을 살피다 나한테 뭐가 중요해서 이런 느낌이 찾아왔을까를 본다. 그 중요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가방 속에서 혹은 주방에 붙여놓은 NVC 미니카드에서 다가오는 단어를 입으로 말하여 내가 듣도록 한다. 아~ 나는 함께 하는 힘이 좀 필요했구나, 헌데 그 도움을 받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구나...그리고, 음~...하며 좀 거기에 머무른다. 그럴 때 어깨는 좀 긴장이 풀리고, 아랫배가 편안해지며, 심장도 좀 조용해진다. 그러면 그때 그 필요한 도움을 받으려고, 나에게 혹은 타자에게 부탁할 수 있는 문이 빠끔히 열린 것을 본다. 이 과정은 물 흐르듯 유연히 진행될 때도 있고, 생각에 사로잡혀 몇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마음에 자리 잡아 꽁~하고 있을 때도 있다.
한 달 전 NVC 연수 마지막 날, 선생님과 우리 다섯 명은 오전에는 듣기 힘든 말을 듣는 네 가지 방식(사실은 두 가지 방식, 비난vs 공감)과 감사를 하고 헤어졌다. 듣기 힘든 말을 들을 때, 자기 탓을 하거나 상대 탓을 하거나(두 가지 다 비난), 자기 공감을 하거나 상대 공감을 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두 가지 다 공감). 우리는 서로의 듣기 힘든 표현의, 그 말을 듣는 자기 탓하는 자신이 되어주기도 하고, 상대 탓하는 자신이 되어주기도 했으며, 내가 그것이 필요해서 이러했구나 하는 공감 받는 자신이 되어보기도 하였으며, 내 공감을 받고 나서 나의 상대는 그 순간에 나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표현을 했구나를 들여다보았다. 살짝만 보았다. 아직 상대를 공감하고 싶지 않은 내가 화를 낼까 봐... 자기 탓이 깊어서 에너지가 내려가거나 그 상황에 있었던 자신에 대한 애도가 올라와서, 내가 바라는 안전한 세상에 도달하는 길이 너무 멀고 아득하여서, 한참을 슬픈 나에 머물러 보기도 하였다. 타인이 건넨 어떤 표현들이 처음에는 내 것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내 안에서 나를 검열하고, 나를 자책하는 내 안의 교육자로 자리 잡은 것이 억울하여, 그것이 내 본질을 가리거나 깨고 있는 걸 보는 것이 힘들어, 손수건이 흠뻑 젖기도 했다. 캐서린의 말이 떠올랐다. 우린 많이 울어야 사람이 되겠지요…. 하셨던... 오래된 상처일수록 깊은 애도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던 그 말씀...
네 가지 선택을 보고 나서는 뜨끈하고 진한 국물의 추어탕을 든든히 먹고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사’를 하였다. 상대에 대한 감사와 나에 대한 감사. 오전에 어쩔 수 없이 애잔했던 마음들이 쭉 펴졌다. 상대에 대해 감사를 하는 순간에도, 내 성향이 나에게 주는 감사를 살펴보는 시간에도, 웃음 띤 얼굴과 가슴과 아랫배까지도 따뜻해지는 기운이 작은 교실에 가득 찼다.
헤어지기 전에 누군가 애써 배운 기린 에너지를 기억하는 과정을 혼자 하기엔 너무 버거우니,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고, 우린 그와 함께하고픈 마음을 내었다. 기꺼이. 그래서 한 달 동안 매일 감사일기 밴드를 만들어 그 마음을 이어 가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감사를 적는다.
2주 정도 생각과 마음속에서 맴돌던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흔들리는 목소리…. 오랫동안 슬픔 속에서 걷고 있는 목소리였다. 슬픔을 나누었고, 같이하는 힘과 관계, 아쉬움이 깊어 슬픔이 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친구는 딸에게로, 나는 교실로. 몸은 멀리 있지만, 목소리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고맙고, 위로될 수 있어 감사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연한 순간에 닿아서 신비로웠다. 친구가 밤 동안 슬픈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할 수 있기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