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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121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비혼주의자에 출산을 원치 않았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나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어떤 때에는 보호막이 되었지만, 어떤 때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폭력의 굴레였다.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야 부모 사이의 끈질긴 갈등과 싸움의 정체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기 나는 엄마의 입장을 정확히 옹호하지 못하였고, 아빠의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에 분명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아빠는 중학교 때 보은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 대학까지 다녔는데, 종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셋째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더랬다. 아빠는 학업을 하는 동안 미아.. 2026. 6. 25.
아이가 데리고 간 세상 아이가 데리고 간 세상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침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아이는 어느덧 거실과 옷방, 서재, 부엌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로 자랐다. “이게 모야”는 “엄마”, “아빠”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내뱉은 첫 번째 단어였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검지로 허공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이게 모야”를 남발하는 아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보통 한 단어씩 이야기하다가 두 단어를 이어 붙여서 말한다는데. “안녕”을 말하기 시작한 해인이는 사람 외에도 온갖 비인간 존재들을 향해서도, 그리고 (아마도) 보이지 않은 존재를 향해서도 “안녕”을 외치기 시작했다. “녕”이라는 발음이 꽤 어려운데도 곧잘 “안녕”이라 말했다. 해인이 덕분에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 2026. 5. 26.
시간제 보육을 맡기다 시간제 보육을 맡기다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고구마 같은 갓난아기를 집에 데려오고, 아기를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던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생후 6개월,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이 되자, 주변으로부터 ‘어린이집은 언제 보내냐’는 질문을 듣기 시작했다. 요즘 어린이집에 ‘0세 반’개설은 기본이고, 어린이집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를 거는 일은, 태아보험 가입만큼이나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돌이 지나도록 우리가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놓지 않자, 주변의 질문은 ‘경고’로 어조가 바뀌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해인이가 세 살이 되기까지는 가능하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보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1년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귀하자 돌봄 노동이 아내에게로 쏠리게.. 2026.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