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프미 서른 여덟 번 째
유령 연구 :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 동녁
연구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유령들의 이야기
이구원
연구 서적과 그다지 친하지 않다 보니 책을 읽고 집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특히 아픔과 감정을 꾹꾹 누르고 객관적 연구자의 관점에서 본 저서의 연구와 서술 이유를 밝히는 책의 도입부는 개인적으로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초반을 견디고 읽어가다 보니 죽 읽어갈 수 있었다.
국수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는 부정하지만 k컬쳐(스포츠 음악 등)의 성취를 뿌듯해하고 한국인으로써의 소속감에 기반한 자긍심을 약간은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아프고 어두운 장면들을 접할 때면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고는 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처럼 유령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한국과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가지며 살아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와 양공주(기지촌성노동자)가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으나 책을 읽어가며 구조적 측면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 유령처럼 대하던 기지촌성노동자가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던 윤금이 살해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성만 강조되고 그들의 주체성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에 공감이 갔다. 장애인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라 외치고 차별을 철폐하는 투쟁의 과정에서도 종종 장애인들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며 주체성을 의도치 않게 축소하는 경향에 상당한 씁쓸함을 느낄 때가 많았기에 이 대목이 더 와 닿았다.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적 역사가 연구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유령들의 이야기가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와 사회 내 다양한 유령과 같이 살아왔던 이들의 이야기에 나부터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겠다.
“침묵은 해결이 아니다”
이재헌
그레이스 조의 ‘전쟁같은 맛’은 성노동 여성이 미국사회에 정착해 가며 격었던 가족의 역사와 애환을 그려 낸 깊이 있는 수필이라면, 유령 연구는 사회에서 소외된 성노동 여성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침묵되고 삭제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끝내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한 학술내용과 개인사 서술이 함께 담긴 저서다.
이 책에서 유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회에서 차별받고 경시받다가 지워져간 약자들의 기억과 그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 구체화 되지 못한 채 그 공간에서 부유하는 것들을 상징한다. 우리 사회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고 묵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은닉하고자 했다. 대부분의 당사자들도 침묵을 선택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그 상처와 불행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떠도는 유령같은 존재들을 기억하고 추적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의 트라우마는 그들의 가족과 그 시대 사람들 모두에게 전이 될 수밖에 없다. 침묵은 해결이 아니다. 국가나 사회가 어떤식으로 개인들을 소모하고 핍박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제 넓은 광장에서 유령의 목소리들이 구체화 되길 희망해본다.
“배회하는 기억을 기록으로 불멸루 이끌었다”
나순결
양공주는 미제와 정부으 합작으루 탄생되구 존속•수탈된, 또헌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에 짓이겨진 남고려여성인민으 역사를 고스란히 대변헌다.
모든 끔찍허구 폭력뿐인 상황 이면에는 여전히 보듬을 가치가 있는 생명의 숨결이 있다. 그거이 삶에 의미를 부여헌다. 살아야 헌다. 기필코 살아내야 헌다, 이면에 있는 생명에 숨결을 온전히 전달허기 위헌 소임이 있기에.
그 작가는 긴 시간 모부으 트라우마, 발설치 못헌 말에서 배회혔다. 기억을 기록으루 불멸루 이끌었다. 혀서 그는 모부 존재 당위성을 행위으 필연을 논리루다가 이론으루다가 정체시켰다. 문자으 힘을 극명허게 보여줬다. 내는 해내지 몬혔다, 어머니와는 기나긴 대립으루 기회를 놓쳤구, 아버지 제안은 내가 거절혔구. 내가 이리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다. 보갱•희굥 내 두 딸 서사에 큰부분을 차지헐 내야그가 공란으루 남는 게 두려워서.
음~ 마지막으루 위안부 지원 반대 데모허는 이들에게 몇마디. 뭐 쫌 알구나 떠드셔! 타깃이 위안부 및 지원단체여서는 매우 곤란헌거지. 책임 당사자-일제국주의와 해결 몬허구 내리 방치만 혔던 정부를 족쳐야지 어!따!대!구!
글구 위안부가 뭐여 위안부가. '일제군 성노예'라 칭혀야지. 양공주를 '미제군 성노동자'라 혀야되듯이.

비밀에 부쳐진 말들, 삭제된 존재의 배회, 트라우마의 체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보존하라
이은규
책 표지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흑백으로 처리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몽키하우스라 불렸던 건물이 흔들리고 배회하는 유령처럼 다가왔다.
현재 이곳은 동두천시가 “소요산 관광·확대개발 사업”을 위해 철거할 계획이다. 이를 막기위해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537일째(2월15일 현재) 농성을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공대위는 과거 미군 위안부 여성을 포함한 성매매 여성에 대해 국가가 직접 관리·방조하며 자행한 폭력에 대해 정부의 공식 사과와 책임 있는 보존 방안을 요청하고 있다.
유령 연구를 읽는 내내 저자의 ‘전쟁 같은 맛’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펠프미 열 여섯 번째 책 https://sumofhuman.co.kr/908)
유령 연구의 부제는 비밀에 부쳐진 말들, 삭제된 존재의 배회, 트라우마의 체현
비밀에 부쳐진 말들
위안부는 양공주의 유령이다. (30면)
한국인에게 1945년 9월은 35년간의 야만적인 일제 식민 통치가 막을 내린 해방의 순간이었지만 이는 며칠을 가지 못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남한의 미군 지배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서막이기도 했다. (......) 양공주 만들기라는 맥락에서 1945년 9월은 일본 제국 군대를 위해 마련된 성 노예시스템이 미군을 위해 마련된 기지 매춘 시스템(기지촌)으로 전환됨을 알렸다. 그것은 과거로부터의 트라우마가 미래로부터의 트라우마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33면)
삭제된 존재의 배회
가장 기본적으로 유령을 연구함으로써 사회와 망자의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게 된다면, 유령과 그것의 배회 효과는 기억의 한 양식으로, 그리고 현재에 윤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소로 작동한다.(66면)
트라우마의 체현
나는 유령이 모호한 존재이긴 하지만, 수치심 때문이든 탐욕 때문이든 아니면 내가 또 다른 자신/또 다른 가족/또 다른 민족과 공모함으로써 나 자신/내 가족/내 민족을 상처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든, 어떤 몸들을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강등시키는 사회에 가차없이 부담을 주기를 바란다. (......) 또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보는 데서 비롯되는 고통은 필연적으로 상처와 그에 대한 책임 모두의 유포를 의미한다. 사실 이런 인정은 재클린 로즈가 말한 “엮이고 싶지 않은 괴물 같은 가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괴물 같음 속에서 뒤얽힘의 윤리 역시 떠오를지 모른다. 유령을 이 세상에 풀어놓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지만, 확실하진 않아도 나는 자아를 배회하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을 때 거기에 따르는 대가가 더 클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3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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