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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서부는바람18

어떤 기다림 어떤 기다림잔디 빨래를 널으러 뒷마당에서 빨랫줄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에도 내 등 뒤에서 툭,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홍빛 해가 하나 뒷마당에 깔아놓은 파쇄석 위에 떨어져 있다. 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꼭지를 떼어내고 반을 갈라 조금 먹어본다. 어제 먹은 것보다 엊그제 먹어본 것보다 달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만 먹는다. 먹는 동안에도 아까 해 떨어진 옆자리에 해가 또 떨어진다. 냉큼 주워 조금 맛보고 다시 혼자만 먹는다. 온종일 뱃속에 든 두 해님 덕분에 온기가 그득하겠다 싶다. 그래도 가을은 기어이 돌아오고야 말아서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주홍빛 해의 빛깔을 닮은 하루에 한 번뿐인, 노을이를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피부가 진짜 가을이가 돌아왔나 보다 느끼던 날부터는 퇴근할 때, 동료들.. 2025. 9. 25.
여름밤의 이야기 여름밤의 이야기잔디 한밤엔 고요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어둠 속에서 반짝거려요. 별빛에게 소리를 입힌다면 아마도 지금 들려오는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낮의 뜨거움은 어디로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반짝이는 소리만 제 귀에 들릴까요. 뜨거움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여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식탁 주위에 앉아 당신을 향해 이야기를 보냅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더위는 더위대로, 또 비는 비대로 그대로 맞이하고 계시겠지요. 오늘은 저녁 차리면서 뉴스를 힐끗힐끗 보았어요. 화면에 등장하면 고개를 돌리고 싶은 얼굴들, 사건들이 즐비합니다. 평정심을 거실 바닥에 떨어뜨리기가 일쑤예요. 그러다 순식간에 뭉클해지기도 하죠. 산불 때문에 아직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동병상련이라며.. 2025. 7. 24.
작은 것들. 작은 것들. 잔디 하루 이틀 사이에 개구리 소리가 밤공기를 가득 채운 것처럼 들린다. 아침에는 서늘하다가 오전이 되면 덥고 오후엔 땀이 나다가 밤엔 다시 서늘해지는 그런 날들의 연속. 지구의 기후가 이상하다고 하여도 개구리는 개구리의 때에 소리를 내고, 작약은 작약의 때에 피어나고 지고, 어느새 상추는 부지런히 뜯어먹고도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상추의 작은 잎을 뜯을 때는 정말 소중히 부드러운 손길로 뜯고, 정말 귀한 걸 먹듯 소중히 먹었는데, 이제는 이걸 어떻게 다 먹지? 겁내며 밭에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만(小滿)이라고 그래서 달력을 들여다보며 소만이라는 한자를 자세히 보니 ‘작은 것들이 세상을 꽉 채운다’는 뜻이라고 그러고보니 정말 사람이건 자연이건 작은 것들.. 2025.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