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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여름밤의 이야기

by 인권연대 숨 2025. 7. 24.
여름밤의 이야기
잔디

 

한밤엔 고요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어둠 속에서 반짝거려요. 별빛에게 소리를 입힌다면 아마도 지금 들려오는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낮의 뜨거움은 어디로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반짝이는 소리만 제 귀에 들릴까요. 뜨거움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여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식탁 주위에 앉아 당신을 향해 이야기를 보냅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더위는 더위대로, 또 비는 비대로 그대로 맞이하고 계시겠지요. 오늘은 저녁 차리면서 뉴스를 힐끗힐끗 보았어요. 화면에 등장하면 고개를 돌리고 싶은 얼굴들, 사건들이 즐비합니다. 평정심을 거실 바닥에 떨어뜨리기가 일쑤예요. 그러다 순식간에 뭉클해지기도 하죠. 산불 때문에 아직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동병상련이라며 산사태가 삶의 둥지를 덮어버린 마을에 트럭에 아담한 굴삭기를 앉혀 진입하는 장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볼 때 그랬어요. 오늘은. 세상이 언어로 정치로 오염되어도 서로의 연결을 꿈꾸는 자들의 연대로 세상은 실낱같은 희망과 아름다움으로 연명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모두의 평탄함과 평온함을 바라는 마음을 향해 돋보기가 햇빛을 모으듯 마음을 모았습니다.

 

회사 로비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재활실 앞에 대기하시는 분들을 위한 의지가 있어요. 오전엔 오가는 이용인 분들이 많지 않아서 2층 복도가 좀 한산합니다. 거의 매일 그 복도 어떤 한 자리에 앉아서 부동의 자세로 가만히 계시거나 누워서 가만히 계시는 한 분이 계세요. 그분이 듣고 계시다는 표시를 하지 않으시더라도 그냥 매번 안녕하세요하고 지나갑니다. 그분의 손에는 1층 식당을 이용하는 식권이 늘 쥐어있어요. 그분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분은 식당만을 이용하기 위해서 오셔서 늘 2층에서 대기하시다가 배식을 받으러 가시는지 열한 시 정도가 되면 그분의 지정석을 빈자리가 되어요. 겨울에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 의자에 누워 계시다가 계절이 바뀌면서 그분의 옷차림도 좀 얇아지기도 해요. 인사는 그저 계속되었습니다. 5년 정도 그렇게 인사하면서 시간이 지났을까요? 3일 전엔가 딱 한 번 그분과 주고받는 말을 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팥빙수가 배식 후에 나온다는데 팥빙수 좋아하세요? 라고 말을 건넸는데 그분이 정말 한참을 팥빙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어요. 5년 동안 한 번도 대답도 말씀도 안 한 사람 맞아? 아니 이렇게 말씀을 할 줄 아시면서 그동안 왜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신 거야, 라고 머릿속에서 아무 말이나 막 떠올랐어요. 중요한 것은 물론 손바닥과 손바닥이 만나 박수소리가 나듯 서로의 목소리가 오고 갔다는 것. 하하하.

 

또 하나의 경험. 재활실을 이용하는 아동 중에 준이가 있거든요. 준이는 어떤 걸 하던 본 다음에 똑같이 하는 걸 진짜 잘해요. 교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 사용한 다음에 정리하는 것, 교구가 처음에 어떤 모양새로 있었다면 그 모습 그대로 머릿속에 사진을 찍은 사람처럼 방향을 딱 맞추어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흐트러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흐트러진 것이 있다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놓았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 때 딱 그렇게 놓습니다. 단정히. 준이와 만난 것은 조금 전 의자 아저씨와의 만남처럼 5년 정도 되었는데 준이가 뭔가 속상해서 약간의 소리를 내며 울 때나 신체활동하면서 엄청 재미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낼 때를 제외하고는 준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소리 만드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숨을 내보내고 들이마시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래도 입모양만 따라서 만들지 소리가 준이의 몸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2월에 엄마라고 한 번 소리를 내보낸 다음엔 아빠를 또 5월에 말하고, 지금은 싫으면 아니라고 말하곤 해요. 처음 엄마를 들려주고 엄마라고 따라 말했을 때 뭉클하고 눈물이 났어요. 함께 있었지만 진짜 함께 연결되어있는 느낌이 제 몸에 꽉차올랐거든요. 준의 어머님과 전화상담하면서 서로 울기도 했어요. 기뻐서요.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아닐까요? 서로의 기다림의 시간을 마음을 아는 사람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내가 능력이 안 되는 것일까? 수없이 생각했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감사로 변환되는 순간을 함께 맞이한다는 것. 그저 오늘도 해보자,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해보자. 그러면서 하루하루 쌓아온 소리들이 한꺼번에 아이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한, 봄에 가지에서 연두가 쏟아져 나오듯 그렇게 환희의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어떤 말이든, 가벼운 인사든, 마음을 한껏 담은 감사의 인사든, 상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는 어떤 형태의 말이든 연결의 바람을 가지고 꾸준히 계속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일들을 목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성은 ’, 이름은 준히인 마법사가 부리는 마법을 구경하려면 우린 얼마만큼 자신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마음을 쌓아 올려야할까요? 또 그 빛깔의 마음을 내가 만나는 상대들을 향해서 얼마나 많이 기꺼이 내어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까지 해 오던 대로 진심으로 쭉 해나가겠지요. 걸어가겠지요. 뛰어가기도 하겠지요. 땅 위로 낮게 피어난 나팔꽃처럼 앉아있기도 하겠지요.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엔 작은 트럭에 작은 굴삭기를 싣고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로 달려가는 사람처럼 진심의 모터를 가동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진심의 강이 흘러 흘러 도착할 곳으로 당신과 함께 걸어가고 싶어요. 당신께서 원하신다면요. 저는 원합니다. 함께 걷는 길. 서로를 보아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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