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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수다

by 인권연대 숨 2025. 6. 24.
수다
잔디

 

휴일 오후 문득 나선 길. 접시꽃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피어난 걸 숨죽여가며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담고, 조금 걷고, 도서관 앞에 있는 자그마한 샐러드 집에 들어가 이제 막 진하고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그때 뜻밖에, 어떤 이의 눈물을 만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내 속도 내 속이 아닌데 어째 이리 우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것인가요? 내 과거의 한 때 어릴 적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이 그냥 흘렀지 하며 눈물 흘리는 그의 마음과 잠시 머무를 것인가요? 저는 돌아서지 못하고 그의 등을 쓸거나 흐르는 그의 눈물이나 콧물을 닦을 티슈를 자꾸 건네거나 슬픔이 차오르면 눈물로 콧물로 내보내야지 그래야지 생각하며 그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 시절의 어떤 아이처럼 엄마에게도 자신과 똑닮은 아빠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들을 조금씩, 아기 새가 작은 오디 한 알을 조금씩 떼어먹듯 조금씩, 이야기했어요. 그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 그랬구나... 하기도 하고, 뭔가 그 시절 혼자 울던 나의 이야기도 하고,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과 꺼낼 수 없는 것,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내 안에서는 볼 수 있는 것, 다른 사람은 볼 수 있지만 나는 보지 못하는 것,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그런 것에 대해 어미 새가 오디 한 알을 아기 새에게 물어다 주는 마음으로 조금씩 이야기를 건네었습니다. 그가 이야기 끝에도 여전히 울었지만, 깊은 슬픔이 한 번의 이야기로 뽀송뽀송해질 것 같지 않아서, 그러지 못하더라도 우린 언제나 또 만나니깐 각자의 전화번호가 서로의 페이지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헤어졌습니다.

 

아이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마음에 슬프고 말하지 못하고, 두렵고 엉킨 마음을 곽티슈에 꽉 찬 티슈처럼 꾹꾹 눌러 담고 있었을까? 툭 뽑아서 썼으면 휴지통에 버리면 될 것을 사용한 휴지를 왜 새 휴지위에 꾹꾹 눌러 다시 담으며 힘들어졌을까? 휴지를 언제부터 눌러 담았는지 그걸 아는 게 중요할까? 눌러 담은 휴지 아래 새 휴지가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할까? 눌러 담은 그 휴지처럼 눌려있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할까? 자기 자신만이라도 그걸 알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내가 다 안다고 나에게 말거는 시간이 중요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잔디이모는 여기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 걸어도 좋아,라고 말하며 그 아이와 포옹하고 헤어진 건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어 집으로 돌아왔어요.

어쩌면 출근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에 대해 말 거는 일일지도 몰라요.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종이접기하며 알고, 색연필로 커다란 종이에 커다랗고 둥근 원을 자꾸 그리며 알고,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지금 무얼 듣고 있는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알고 그렇게 알게 된 걸 내 몸의 어느 부분이 느끼고 있는지 내 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말하는 걸 듣고 때론 말하도록 돕고 또 그걸 듣고, 그걸 자꾸 하는 사람. 교실에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은 바뀌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건 무얼 하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들으려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는 걸 말로 혹은 말이 아닌 말로 느끼도록 같이 있는 사람. 때론 내 안의 것은 보기 어려워도, 다른 사람 것은 잘 보여서 잘 느껴서 우린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아침엔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어요. 어머니께서 치매를 앓고 계셔서 친구가 한동안 어머니와 친구 집에서 같이 지내며 보살펴 드리며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어머니께서 그래도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가신다고 매일 밤 서랍을 열어 짐을 쌌다가 풀고 쌌다가 풀고 그러셔서 어머니를 집으로 보내드리고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힘들어 하신다고 해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지금의 질병을 겪어내기가 상당히 어려우시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지금의 아내의 모습이 어려워서 예전의 아내를 대하던 방식과 말로 대하고 계시니 우린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이야기하다가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대하면 좋을 방식으로 우리가 아버지를 대해드리자고 이야기했어요. 너무 이상적일 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에게 느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너무 낯설고 간지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느낌은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이니까, 우린 느낌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라도 청소기 전원버튼 누르듯 공감버튼을 누를 수 있고, 공감의 번역기를 돌릴 수 있으니, 하다못해 A.I에게라도 물어서 그 문장을 그대로 읽는 노력은 할 수 있으니 그래보자고 그렇게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좀 변한 게 있었어요. 우리의 꾸준히의 빛깔이 변해있다는 것이요. 무슨 말인가 하면, 그동안 우리가 꾸준히 하자고 할 때 꾸역꾸역 곽티슈 안의 휴지를 꾹꾹 자꾸 누르는 꾸준히의 마음이었다면, 오늘은 기꺼이와 꾸준히를 발견했다는 것. 딸이니까 엄마니까 교사니까에서의 당위성이나 당연함에서 살짝 다른, 사랑의 존재로서의 기꺼이와 꾸준함. ‘사랑해야만 해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사랑하니깐의 옷을 오늘은 입은 것 같은 느낌. 엄마를 어제보다 겪어내기 힘든 아버지가 아침 6시부터 전화하셔서 사네 못사네 하셔도 아빠 오늘 아침에 힘든 일 있으세요? 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아침. 다행이다.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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