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슬픔
이내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전쟁문학 소설 중 가장 인상 깊었다. 소설의 화자는 북베트남군 병사다.
북베트남은 전쟁에서 이겼다. 소설은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법에서 벗어났다. 그보다 허무주의에 가깝다. 거대한 악을 물리친 승전의 기쁨 대신 깊은 슬픔을 채워넣었다.
소설 후반부, 사이공 함락 후 화자는 공항에서 벌거벗겨진 백인 여성 시체를 본다. 이게 승리의 상징이다. 거의 모든 게 파괴된 잔해밖에 없다.
침략 당한 전쟁에서 이긴 승전국은 이겨도 남는 게 없다. 반대로 졌다면 침략국이 모든 자원을 수탈한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이겼다면 인민의 노동력까지 쥐어짜 수탈했을 것이다.
이란과 미국의 휴전협상이 성과 없이 끝났다. 이란은 또다시 탄도미사일과 150km 밖에서 유도폭탄을 떨어트리고 달아나는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을 받게될 지 모른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란이 이기길 바란다. 자유우파를 내세우는 자들은 신정체제에 반대하는 이란 시민 수만명이 학살 당했다며 침략군 편을 든다. 그렇지만 이란이 이기길 바란다.
이란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미국에 있다가 부재 중 판결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그는 이달 초 터키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조국은 이란이다.
트럼프는 이란의 문명을 지우겠다고 공언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까지 지우겠다는 얘기다. 문명은 지워지지 않는다. B-52 폭격기가 태평양전쟁 당시보다 많은 폭탄을 쏟아부어도 배트남 문화는 풀처럼 살아남았다.
이란은 서아시아의 아랍 국가들과 다르다. 대한민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것보다 큰 의미에서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 민족부터 히브리 계통이 아니라 인도 아리안 혈통으로 구별된다.
그들의 독자적 문명을 트럼프 따위가 지워버리겠다고 떠든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겼다고 우기는 양아치 화법이다. 전쟁을 계속한다면 미국은 베트남 정글에서 패했듯이 이란의 고원과 사막에서 패할 것이다.
이란은 이겨도 당장 상처가 클 수밖에 없다. 침략 당한 승전국의 슬픔이다. 대한민국 역사와 같다. 수많은 침략과 싸워 이겼어도 불탄 마을과 죽은 백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쟁의 슬픔이다.
그래도 이겨야 한다. 패배한 나라는 모든 걸 빼앗기고 유린 당한다. 빼앗고 유린하기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침략전쟁이다. 이기고 난 뒤 슬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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