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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 부는 바람7

<102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아홉째-아이에게_잔디(允) 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너의 일상, 안부를 묻는, 밤 전화를 하려다 생활관 전화기가 계속 통화중이고, 기다리다 시간은 흘러, 소등 시간이 되어, 밤 편지를 쓴다. 혹은 낙서를 한다. 멀리 있는 너를 생각하다 괜스레 불안한 생각이 시작되어, 생각에 생각이 넘쳐 나를 잡아 먹을까 두려워,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필로 종이에 끝없는 낙서를 하다가서는, 이 밤 잠이라도 푹 자기를 바라는 마음 쪽으로 낙서의 방향키를 돌린다. 사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끌고 와, 현재의 너의 생각과 생활을 다르게 바꿀 수도, 미래에 있었으면 하는 일을 잡아당겨 내 뜻대로 이룰 수도 없어. 그 부질없는 생각을 놓고 그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낀다. ‘몽당연필을 손에 쥐고 .. 2021. 1. 6.
<4호> 내 생애 첫 연필_잔디(允) ‘참 소중한 나’ ‘나는 진실하고 정직합니다.’ ‘마당에 봉숭아꽃이 한창입니다.’ ‘어제는 소나기가 내렸다.’ ‘오늘 아침 텃밭에 들깨모종을 하고 학교에 왔다.’ 우리 배움터 학습자분들이 요즘 익히고 계신 문장이다. 우리 배움터 학습자분들의 평균 나이는 칠십육세쯤 될 것이다. 그 분들은 나의 학생이시자 스승이신 분들, 나의 어머니이시자 우리들의 어여쁜, 사랑스러운 어머니이신 분들...... 우리집 큰 아이가 첫 돌을 맞이할 즈음 시작한 이일을 그 아이가 열 살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거의 팔 년이란 시간을 어머님들과 배움을 함께 하고 있다. 도시살이에서 농촌살이로 삶의 주 공간을 옮길 때 우리 부부가 가졌던 꿈은 적은 양이더라도 자급자족하기, 부모님의 배려 덕분으로 가졌던 우리의 배움을 ‘문화나 교육.. 2020. 8. 7.
<제86호> 나는 여전히, 시인이 되고 싶어라_잔디(允)  미희가 있었지. 내 인생에, 초등 3학년 때부터 스무 몇 살까지 미희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미희와 나는, 농구부에서 교대로 센터 역할을 했다. 농구부 언니들에게 경기 진행을 능숙하게 못한다고 혼날 때에도 서로 위로해 주고, 더운 여름 날, 순발력 향상 훈련한다고 왼쪽으로 뛰다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으로 뛰는 것을 한참 한 후 숨이 헉헉 거릴 때에도 조금만 더 참자는 눈빛을 주고받던 미희. 이런 저런 연유로 6학년이 되어서는 농구부에서 나와 서로의 집으로 마실을 가서 떡볶이를 해 먹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보며 깔깔거리던 그때... 미희네 집 뒷마당엔 오늘처럼,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있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 놀러오면, 집에서 붕어빵 봉지를 접는.. 2019.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