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너의 일상, 안부를 묻는, 밤 전화를 하려다 생활관 전화기가 계속 통화중이고, 기다리다 시간은 흘러, 소등 시간이 되어, 밤 편지를 쓴다. 혹은 낙서를 한다.
멀리 있는 너를 생각하다 괜스레 불안한 생각이 시작되어, 생각에 생각이 넘쳐 나를 잡아 먹을까 두려워,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필로 종이에 끝없는 낙서를 하다가서는, 이 밤 잠이라도 푹 자기를 바라는 마음 쪽으로 낙서의 방향키를 돌린다.
사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끌고 와, 현재의 너의 생각과 생활을 다르게 바꿀 수도, 미래에 있었으면 하는 일을 잡아당겨 내 뜻대로 이룰 수도 없어. 그 부질없는 생각을 놓고 그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낀다. ‘몽당연필을 손에 쥐고 나는, 무언가 쓰고 있구나, 숨 쉬고 있구나,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나에게 말하고 있구나, 깊은 밤 홀로 깨어 어두운 공기 속에 앉아있구나, 충만하기도, 외롭기도 하구나...’
가끔 문자 메시지에 찍히는 갓골빵집이나 홍동 로컬푸드라는 글자가 너의 안부를 말해주는 듯, 위안받는다. 아직, 전산실을 어떤 연유로 학우들이 사용하지 못하는지, 페북 메신저도 조용하여...
풀무제 주제를 학우회를 통해 ‘남북한’에서 ‘젠더’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성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 참 지난하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한 쪽은 많은 시간 속에서 쌓인 관습에서 벗어나기 어렵고(그가 관습을 입으려 했다는 뜻은 아님, 관습에 빠져있구나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표현도 아님), 어느 한쪽은 그 관습에 갇혀있기보다 다른 방식으로의 이해와 온전함으로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 부딪히겠지. 때를 맞이하여 그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접하고, 공부를 한다하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벽이 좀 말랑말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단어를 표현하고 이해하는 사고 구조도 다르고, 21세기에 함께 존재하고 있으나, 여성, 남성으로서의 성장과 경험도, 개인의 과정도 서로 다르니까... 사람에 대한 이해로 걸어가보면 좋겠다. 지난 해, 플라스틱에 대해 그저 공부하며 버려지는 것에 대해, 잘 썩어가는 것에 대해 공부했던 것처럼 그렇게.
지나가는 지금을 숨 깊이 들이마시며, 지금을 걷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어떤 생각보다도 지금 내 안의 느낌, 몸의 반응이 그저 ‘나’일거라는... 물론 ‘나’라는 구분도 필요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한 때가, 그래서 ‘지금’일 수밖에 없다는 거. 다른 것은 하나도 잡을 수가 없구나하는... 걷고 있구나,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구나, 가슴이 뛰는구나, 하는..
‘거기에 있었다’라는 문장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왔지, 늘 거기에 있었다. 과거도, 현재도, 또 미래를 품고 있기도 한 것같은 이 문장. 이 글을 읽고 있는 너는,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짐작할까... 그것은 고요한 그 무엇. 선도 아닌, 악도 아닌, 좋은 것도 아닌, 나쁜 것도 아닌, 둘로 나누어질 수 없는, 그것. 마음의 빛.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 그냥 있는 것. 상처받지 않고 오롯한 그 마음.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휘둘리지 않는, 휘둘릴 수 없는. 훼손될 수 없는 그것. 허나 때때로 잊혀지는 것. 그것이 네 안에 있음을, 그것이 ‘지금’임을 우린 언젠가 알 수 있을까...
그리운 너에게... 이밤...
✍ 옷
어쩔 수 없이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의 어떤 말이나 눈빛이 상처가 되어 그를 떠나, 멀리 가고 싶어 어떤 계획을 하고, 생각 속에서 천 번도 넘는 이사를 할 때조차 그의 어떤 말이나 눈빛과 비슷한 혹은 같은 유형의 모습이 내 안에 없다고, 내가 타자에게 그것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아이러니가 때론 깊이 슬프고, 훌쩍 벗어버리고 싶은 무거운 옷이다.
✍ 우왕좌왕
생각과 생각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이, 찰나의 노을이 지나가고, 구름과 어우러진 동터오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 찰나가 지나간다. 아이들과 가까이서 마주하고 웃는 시간이 지나가고, 마음으로 마주치는 때를 자주 놓친다. 우왕좌왕하다가 그저 멈추고, 여기 있을 지어다.
✍ 지금
‘뭐니뭐니 해도 가장 소중함 금은?’이라는 아재 개그가 아니더라도, 우린 ’지금‘이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것을 알지만, 그곳에서 자주 이탈한다. 지금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향해 가다 보면, 더 방황하여 더 공허하고 어지럽다. 아기를 낳았을 때 그리울 곳, 아기를 키우고 나서 그리울 곳, 아기가 떠나가고 자주 생각할 곳. 때론 휘둘리기도 하고, 두리번거리다 다시 돌아올 자리.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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