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십 삼년 4월의 첫 산위바람을 찾아 읽어보았어요. 아기 기저귀를 빨랫줄에 널 듯, 마음을 하늘에 널고 있는 저와 산 위에서의 일상을, 사소함을 나누고 싶다고 고백하는 저를 읽었어요.
그 아기는 열 살이 되었네요. 시간이 쌓이는 만큼 차곡차곡 쌓여가는 말에 눌려 그만 말하고 싶다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기운 내려 꾸역꾸역 먹는 밥처럼 말을 꺼내는 날도 있었고, 꺼내지 않아도 후루룩 후루룩 국수 먹듯 유유히 말이 흘러나오는 날도 있었지요. 한 땀 한 땀 쓰다 보니 여기에 와 있습니다. 도착과 동시에 다시 떠나지만, 동시에 머무르는 이곳에.
가벼이 읽고, 홀가분하게 한 순간 건너가시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쓰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기도 하고, 팍팍한 일상에서 오레가노나 파슬리, 혹은 사과즙처럼, 비타민처럼 사소한 힘이 되기를 바라기도 하였어요. 이러구러 쓰다가 혼자 울어버린 날도, 조사를 하나 넣었다가 지우고, 형용사를 썼다 지우고, 단어의 위치를 바꾸었다 다시 그 자리로 보내며, 혼자 박수친 적도 많아요. 이러다 시인 되겠다 싶은, 시인이 되고 싶다 여긴 날도 솔직히, 있어요.
이미 제 방식으로 일상을 노래하고는 있죠. 사람들이 잠시 허기를 달래려 들른 탁자가 서너 개 쯤 되는 작고 소박한 휴게음식점의 아줌마로 살기를 여전히 꿈꾸듯, 바느질이나 뜨개질하는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듯, 누구든 찾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는 마음 편안해져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는 사람으로 살기를 꿈꾸듯, ‘시인’되기를 꿈꿔요. 저의 글쓰기 과정에 여전히 ‘숨’이 있고, ‘숨’이 과정에 부분으로 함께 하고 있음을 고마운 마음으로 한 걸음 한걸음 걷습니다.
부족함이 늘 묻어나지만, 그때 그때 그것이 ‘숨’ 언저리에 머물고 싶은 노력이었어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어제 한 실수를 오늘 또 하고, 내일도 되풀이하며, 가슴을 뜯겠지만, 때때로 ‘괜찮네’하며 자축하겠죠. 그대도 그러하시기를 바라며... 또, 일상의 사소함에 감동받아 고마움을 받아 안고 뭉클할 거예요. 그대도 그러하시기를 바라며...
마냥 기쁘기만 하지도, 마냥 슬프기만 하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서로를 들여다보며, 서로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걷기를 바라기도, 그러하기도 하겠죠.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으로 말을 건넨다면, 그 두 사람은 진정,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으로 듣는다면 그 두 사람은 진정, 온전함으로 지금에 머무를 수 있을 거야. 노래를 흥얼거리며, 숨을 쉬겠지요. 다시, 숨을 들이마실 수 없는 그 순간까지.
바람과 함께 춤추기도, 바람에 맞서기도, 바람에 넘어지기도, 바람 덕분에 한 숨 돌리기도 하며...
별거 없이.
그럭저럭 그렇게...
'소식지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2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아홉째-아이에게_잔디(允) (0) | 2021.01.06 |
---|---|
<제101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여덟 번째. _잔디(允) (0) | 2020.09.28 |
<4호> 내 생애 첫 연필_잔디(允) (0) | 2020.08.07 |
<2호> 지금 여기에서..._지나 (0) | 2020.08.07 |
<99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일곱 번째_잔디(允) (0) | 2020.07.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