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신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고... 한해를 지나고 보니 풀은 정말이지 잘도 자란다. 전쟁이란 표현을 쓰시는 어르신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나는 풀이 너무 예쁘다. 풀꽃은 더더욱... 이분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속의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영성적인 시 한편을 선사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나태주>
이곳으로 온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도시에서 여기 땅으로 처음에 왔을 때 살림살이는 비닐하우스에 넣어두고 컨테이너 두 대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생활용수는 우물에서 끌어와 사용하고 목욕은 야외에서 달빛보며.... 그렇게 땅위의 삶이 시작되어 농부라는 이름으로 포도밭을 일구고 소량이긴 하지만 먹거리로 콩, 참깨, 들깨, 땅콩, 고구마, 배추, 무, 쌈채,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등등을 심어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였다.
여름 끄트머리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삼년정도 비어있던 집이라 구석구석 묵은 먼지를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하고 창호지도 다시 바르고 나니 아주 괜찮은 집으로 변신! 이 모든 과정을 친구들이 함께해 주었고, 지금도 주말마다 포도밭 일을 함께하거나 고구마농사를 함께 짓는 고마운 동반자들이다.
포도수확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 때쯤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을 담그고 나머지는 독에 묻어두어 겨울양식 준비를 하였다. 화목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어 나무를 마당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 또한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온몸으로 겨울을 준비한 남편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 한가득...
바깥문, 창문에 비닐을 덧대어 찬바람을 막아주어야 하고, 방문마다 문풍지를 붙여주고, 수도꼭지는 얼지 않게 몸통까지 이불로 꼭꼭 감싸주고 나면 어느 정도 겨울준비가 끝나간다.
온 세상이 하얀 어느 겨울밤 산책을 함께 나갔다. 보름날이라 환한 달빛에 눈밭은 반짝반짝! 겨울밤 산책의 큰 선물이었다. 자연이 주신 선물을 함께 느낄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아궁이 앞에서 나무로 무언가 만드는 사람이 있고, 따듯한 아랫목에서 바느질 하는 사람이있다. 때로는 함께 땅콩을 까기도 하고, 콩을 고르기도 하고,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으며 이불속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눈 쌓인 날은 비료포대에 지푸라기를 넣고 눈썰매를 타기도하고, 영롱한 별빛바라기도 하며 이곳에서의 첫겨울을 지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고 ‘똑! 똑!’ 얼음 녹는 소리가 들려오면 살살 밭으로 나가 나무들을 살피고 거름을 주고 포도나무가지를 전지하며 봄 맞을 준비를 하였다. 톡! 톡! 꽃망울 터지는 모습을 보며 웅크려 있던 우리네 마음도 열고 집안을 열어 온몸으로 온 집안으로 봄을 들이고 땅위로 나갈 채비를 한, 나는 지금여기 있다.
두 번째의 여름, 나는, 이른 아침 새벽공기를 온몸으로 받아 안고 마당에 서 있다. 문여는 소리를 듣고 자기 집에서 나와 나를 반갑게 쳐다보는 몽이(여기에 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인사를 한다.‘안녕’집 앞에 있는 포도나무에게도‘안녕 잘잤니?’그 찰나 하늘위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간다.‘새들아 안녕’하며 오늘의 아침을 맞이한다. 명색이 농부인지라 새벽에 일어나 주섬주섬 일할 채비를 갖추고 밭으로 나간다. 햇살이 뜨거워지면 집으로 와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잠시... 쉼을 한 뒤 다시 밭으로.. 간식거리로 막걸리 한 병 주전부리 하나 물 한 병... 일하다 그 자리에 앉아 먹는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의 살랑거림이 기분을 좋게 만들고 막걸리 한 모금이 허기짐을 달래는 이 순간 ..그냥 좋다... 손 전화 소리가 울린다. 이장아저씨다. 날도 뜨거운데 어디 가서 점심 먹고 오자고 하시는 말씀에 흔쾌히 따라나서서 맛나고 배부르게 먹고 온다. 귀농자들을 살피시는 맘 좋고 넉넉하신 이장아저씨...(이런 날은 정말 좋다... 한 끼의 노동을 줄일 수 있으니..ㅎㅎ)
일을 하는 중‘저기 하늘 좀 봐’하는 남편의 기분 좋은 소리에 고개 들어보니 붉은 태양이 산 고개에 걸쳐 진풍경을 만들었다. ‘아~~ 예쁘다’ 절로 감탄! 어떤 날은 맑은 하늘에 흰구름이 떠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빗님 내리기전의 하늘을... 어떤 날은 새들의 행진을... 그렇게 하늘을 우리 마음에 담아낸다. 어둑어둑해진 해거름에 집으로 들어와 밭에서 뜯어온 비름으로 나물을 무쳐 소박한 저녁을 먹는다. 정리가 끝나면 오늘은 무얼 했는지 농사 일기를 쓰고 있노라면 어느새 졸고 있다. 졸음에 겨운 나는 내일도 그렇게 여기에 머무르는 놀이를 즐길 것이다. 지금, 여기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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