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보슬비에 젖어 싱그러운 빛깔이던 낮에 만난 원추리꽃, 비비추, 벌개취꽃, 삼잎국화는 어떤 마음 빛깔로 이 밤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믐이라 오늘밤 하늘은 무척 어두운데, 짙은 어두움이 무서울까? 짙은 어두움이 감싸주는 포근함과 은은함으로 한 밤의 서늘함을 견디고 있을까? 아주 작은 기운과 아주 사소한 말의 기운에도 미세한 균열이 나는 마음을 간직한 저는, 쉽게 흔들리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에는 애써 숨을 자주 멈춥니다. 숨을 밖으로 내보내고는 들이쉬지 않고 코를 감싸쥐고, 가만히 있는 것이지요. 신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은 숨 참기의 여러 가지 잇점을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저는 그저 숨을 멈추었다 갈급함으로 한껏 숨을 들이쉴 때, 그리고 가슴에서 쌕쌕 소리가 나는 날, 내 안에 있는 숨을 끝까지 내쉬어 몸 밖으로 다 내보낼 때,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어요. 살아서 마음이 흔들리고, 살아있어서 마음을 맛보는구나하고 말이에요. 살아있는 것이 견디고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살아서 한 발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한. 한없는 고통도, 한없는 기쁨도 없이 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허상이 아닐까 해요. 고통도 기쁨도 다 나를 지나가지만, 고통을 느낄 수 있으니 기쁨을 볼 수 있고, 기쁨을 보낼 수 있으니 다시 고통을 또 맞이할 수 있겠지요. 어차피 지나가는 것이니까. 그 무엇도 붙잡지 않고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때가, 저에게, 올까요? 우연히 제게 굴러왔던 공이, 제가 그 공을 만지거나 하지 않아도, 공을 애써 굴리지 않아도 저 멀리로 굴러갈 때, 저 멀리로 사라질 때까지 그저, 그 공을 볼 때처럼요. 그저 보기만 할 때처럼요.
또, 가끔 생각해요. 언어가 생각을 담아내지 못하는 걸까. 생각이 언어에 갇히는 것일까. 언어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생각을 어디에 담아 두어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반복하다 툭툭 털고 일어나 초록 사이를 걸어요. 언어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낼 방법은 영영 없겠다 싶어 흐느껴 울었던 나를, 그날을 기억합니다. 아이들에게 ‘먹어요’, ‘마셔요’를 온 몸으로 가르치다 외로워서 울어버린 날도 많아요. 함께 있으나 함께 있지 않은, 힘껏 표현했으나 가짓것 표현하지 못한. 그러다 다 담아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알잖아 하며 그 마음에서 돌아섭니다. 그래요. 비언어적인 것.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 손짓, 눈짓, 몸짓. 말없이 건네는 차 한 잔. 마주 앉아 보내는 끄덕끄덕하는 고갯짓. 그 작은 움직임이 주는 파동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아요. 그 파동 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한갓 사유 안에서의 자유형일지라도...
✐ 벌
상과 비슷한 것. 그것을 받는 사람의 능동성이나 자발성을 배제하는 한, 사람을 테두리에 가두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다. 함께 축하하고 함께 애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피어나는 꽃일진대.
✐ 식사
내가 들은 캄보디아 사람의 식사. 식초, 설탕, 소금에 절인 망고를 얇게 저며 그것 한 조각과 물 한 모금을 번갈아하는. 라다크 사람의 식사. 채소 끓인 것과 얇게 민 밀가루 반죽을 구운 것, 그리고 요거트. 나의 식사를 생각한다. 식물성 식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요즘. 가벼운 밥상에 가벼운 몸과 홀가분한 생각에 대해...
✐ 손수건
지금은 다시 손수건을 찾는 시간.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우리 주위에 허다하던 수많은 거즈 손수건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은 컸고, 이제 그 거즈손수건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나 혼자만 손수건을 사용하기보다 면 손수건을 식구들 주머니 속에 하나씩 넣어주고 싶다. 물티슈보다, 곽티슈보다 두루말이 휴지보다, 식당에서 냅킨을 잔뜩 사용하기보다 손수건 사용하기를 권유하고 싶다. 사소함이 지구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아끼고, 지켜야 그곳에 기대서있는 나도, 우리도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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