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을 타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우리. 여기까지 흘러, 小滿(소만)이라는 절기에 닿아 제법 우거진 초록 사이에서 하얀(흰) 꽃을 봅니다. 올해엔 특히, 쪽동백나무가 틔워낸 하얀 꽃이 제 마음에 앉았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하얀’이 아기의 순수성에 가깝다고 하면, ‘흰’은 삶의 각각의 지점에서 배움을 꿈꾸며 삶을 살아낸 사람이 낼 수 있는 순수에서 뿜어 나오는 고결함 같아요.
빈 논에 물을 담고, 그 흙을 갈고, 곱게 펴고, 어린 모를 심는 사람들을 오가며 봅니다. 기계로 모를 심은 후 한 줄 한 줄 모를 이어주는, 발과 다리가 푹푹 빠지는 무논에서, 허리 구부리고, 홀로 일하시는 분들. 배추밭에서, 혹은 사과밭에서, 부지런한 동작이지만, 고요히 흐트러짐 없이 움직이시는 어른들을 오가며 뵈면서, 일터에서 사람과 다시, 부딪으며 많은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 저는, 그 고요함이 부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허리는 고되고, 다리는 무겁고, 구부리기조차 힘든 손은, 저녁밥상에서, 깊은 밤 뒤척일 때, 사소한 움직임에서조차 통증을 느껴 힘드실 것을 상상하면서도 말입니다
만질 수 없는 사람을 기억하며 아파하는 사람들, 만질 수도 없어서 버릴 수도 없는 아픈 기억에 여전히 힘들고 아프게 이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 함께,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대에게, 그들께, 우리 모두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그들을 만질 수 있고, 보듬을 수 있고, 내 상처 또한 드러낼 수 있으니... 숲에 꽉 차오른 초록처럼 우리도 차오르겠지요. 어떤 빛깔으로든...
✎ 라르고
음악의 그 어떤 빠르기보다 위안을 주는 속도. 라르고,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폭이 넓게라는 뜻을 지녔다.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다 다른 속도의 라르고이겠지만, 벚꽃이 바람 따라 흘러가는 풍경과 닮아있는 빠르기라고 한다면, 나는 나의 삶을 그 속도로 연주하고 싶다. 그러면 연주 시간이 너무 길어질까? 그래도, 삶에 대한 마음을 유지하며 연주할 수 있을까?
✎ 라디오
어디서든 나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친구가 되어주기도, 질문이 되어주기도 하는.
✎ 라일락
4월의 향기. 5월의 초입까지도 지속되는, 라일락이라 부르기보다 ‘수수꽃다리’라고 즐겨 부르는...
✎ 루비
내가 소유한 보석이라고는 밋밋한 혼인 반지가 전부이지만, 가끔 손목시계의 약을 넣으러 시계방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동안 진열장의 장신구를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에머랄드의 초록빛이 위로라면, 루비의 빨간빛은 사치이지 않을까, 하고.
✎ 라운드(둥근)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빈 종이를 나누어 줄 때, 모서리를 둥글게 오려서 건넨다. 정리되고 따뜻한 집안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둥글둥글한 편안함을 주듯, 모난 종이보다 둥근 종이 안에서 마음을 편안히 펼쳐보기를 바라며.
✎라면
우리 집에서 그 어떤 반찬이나 단품 요리보다 가장 인기 있는. 어떤 이는 라면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며, 라면 개발자에게 평화상을 주어야한다고 말하지만, 한때 나는 라면을 질투했었다. 한 시간을 공들여 차려낸 밥상보다, 5분 정도 조리하여 낸 그것을 먹으며 식구들이 내는 맛있는 소리라니...
✎ 리듬
어떤 때에는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드럼 연주자가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한 박자를 무수히 나누어내기도 하는 그의 기술이, 그것을 이루어내기까지 그가 지나온 시간과 견디어온 마음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드럼연주자라면, 나의 리듬은...? 두 박자에 한 타 정도이지 않을까... 느릿느릿, 엉금엉금.
✎ 램프
램프의 요정이 있었지. 요정이라기보다 ‘소원을 듣고, 그것을 이루어주는 자’라고 표현하고 싶은. 그가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물어본다면 첫 번째 소원은 무조건,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해야지. 두 번째 소원은 그 도서관을 누구든 읽을 수 있는 종이책, 소리책, 그림책, 점자책... 책, 책, 책이 풍성하여 누구든 드나들고,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꽃 피울 수 있도록 그 마음 터가 되는 도서관을 책으로 채워달라고 해야지. 세 번째 소원은 그 도서관 한 켠에서는 누구든 원하면, 일주일 동안 책이 가득한 방에서 머무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해달라고 졸라봐야지...(꿈에서...)
✎ ~ 라면
네가 나라면, 내가 너라면. 그 라면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런 가정은 생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 내가 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듯, 너는 나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지. 내가 이 신발을 신고 세상살이하는 이유를 이해받고 싶은 어떤 때가 있듯, 네가 너의 신발을 부여잡고 걷는 이유를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너의 신발과 나의 신발은 다르구나, 그럴 수 있구나 라고 여길 수 있다라면, 우리, 좀 더 가볍게 서로를 만날 수 있을까. 마음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말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 말과 표현을 듣고, 내가 상상하고 해석한 만큼 가늠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해석과 상상의 영역을 넓히고 깊어지는 과정이, ‘사람의 살이’겠지 하며, 초록에 기대어, 오늘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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