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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54

챗님. 챗님.잔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밭 한가운데서 감자 캔 자리에 호미로 살짝 흙을 걷어 올리고 콩 세 알을 넣는 걸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하며 반복하겠지. 그러다 허리를 펴려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하겠지. 누군가는 시를 쓰려고 잔뜩 등을 구부리고 다가올 언어를 찾거나 기다리거나 하겠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아침의 분주함으로 사람을 맞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 한 잔을 만들어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고요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도 친절한 듯 물결무늬 문장 부호 “~~~”를 상대에게 보내는 문장의 끝에 어쩔 수 없이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하나 정도는 넣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조금 전 하안거 프.. 2026. 6. 25.
설거지 설거지잔디 어제도 했던 설거지를 오늘도 또 하고, 작년에 설거지를 올해도 계속한다. 살아있는 한 나를 위한 설거지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 감사 일기를 ‘감사의 정원’에 적다가 “오늘 나의 환경을 위해 실천한 작은 행동 한 가지를 칭찬해 보세요.”라고 팁이 뜨기에,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밤이 지기 전에 해결한 것 참 잘 했어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설거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걷기는 못해도 매일 빠지지 않는 일과처럼 해야만 하는 숙명의 매일 반복되는 설거지이지만, 설거지에 대한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걸 문득 알게 되었다. 퇴근해서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하나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잠시 쉬었다 설거지를 하고 공부하러 책.. 2026. 1. 26.
어떤 기다림 어떤 기다림잔디 빨래를 널으러 뒷마당에서 빨랫줄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에도 내 등 뒤에서 툭,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홍빛 해가 하나 뒷마당에 깔아놓은 파쇄석 위에 떨어져 있다. 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꼭지를 떼어내고 반을 갈라 조금 먹어본다. 어제 먹은 것보다 엊그제 먹어본 것보다 달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만 먹는다. 먹는 동안에도 아까 해 떨어진 옆자리에 해가 또 떨어진다. 냉큼 주워 조금 맛보고 다시 혼자만 먹는다. 온종일 뱃속에 든 두 해님 덕분에 온기가 그득하겠다 싶다. 그래도 가을은 기어이 돌아오고야 말아서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주홍빛 해의 빛깔을 닮은 하루에 한 번뿐인, 노을이를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피부가 진짜 가을이가 돌아왔나 보다 느끼던 날부터는 퇴근할 때, 동료들.. 2025.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