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원11 인권연대 숨 일꾼으로 활동을 마치며 인권연대 숨 일꾼으로 활동을 마치며 이 구원 2023년 3월 30일, 저는 인권연대 숨에서 25개월간의 활동을 마치며 일꾼에서 회원으로 돌아갑니다. 숨에서 활동을 고민하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분노와 불안, 방황 속에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생활을 하던 설렘은 사라졌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의미와 즐거움 모두 찾기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인권에 대한 의식과 감수성이 활동을 하며 조금은 생겼지만 그럴수록 인간과 세상에 대한 환멸도 커지는 듯 했습니다. 인권과 내 삶이 충돌하며 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함이 저를 짓누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권연대 숨 일꾼님들의 초대 제안을 받고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길 원하는지 숨을 쉬면서 찾아보고 싶어 .. 2023. 3. 27. <105호> 2020 그리고 2021_이 구원(회원) 2020년은 나에게 다양한 의미의 한 해였다. 물론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집어 삼킨 한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더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던 지난 해였다. 20대에 머물 것만 같았던 나이가 30대의 경계를 완전히 넘었으며 정말 오랜 고민 끝에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단체와 활동들을 그만 두었다. 또 내가 줄곧 회피해 왔던 상처를 잠시나마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했었다. 2021년이라는 또 다른 새해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지난 시간 속 나와 나의 감정을 뒤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에 대해서 아직 상대적으로 젊기에 무언가를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한 느낌도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삼촌 혹은 아저씨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이제 별로 이상하지 않다. 200.. 2021. 1. 27. <104호> 가족이라는 말_이구원(회원) 가족은 나에게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들에 대해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냉정하게 말하자면 난 가족에 의해 버려졌고 그로 인해 가톨릭교회의 한 종교단체(선교회)에서 26년의 삶을 살아왔다. 물론 내가 살아왔던 공동체에서도 가족 같음을 강조했었고 어릴 때는 그 곳의 분들을 엄마, 아빠 등으로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어가며 내가 살았던 공동체가 가족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머리가 커가며 늘어만 가는 불편함에 내 주변의 편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가족 같은 공동체’가 아니라 ‘가조오옥 같은 공동체’라며 뼈 있는 농담을 하곤 했었다. 뿐만아니라 자립 이후 동료 장애인 분들과 상담을 하며 가족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가장 큰 억압의 주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일.. 2021. 1. 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