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숨 일꾼으로 활동을 마치며
이 구원
2023년 3월 30일, 저는 인권연대 숨에서 25개월간의 활동을 마치며 일꾼에서 회원으로 돌아갑니다. 숨에서 활동을 고민하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분노와 불안, 방황 속에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생활을 하던 설렘은 사라졌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의미와 즐거움 모두 찾기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인권에 대한 의식과 감수성이 활동을 하며 조금은 생겼지만 그럴수록 인간과 세상에 대한 환멸도 커지는 듯 했습니다. 인권과 내 삶이 충돌하며 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함이 저를 짓누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권연대 숨 일꾼님들의 초대 제안을 받고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길 원하는지 숨을 쉬면서 찾아보고 싶어 인권연대 숨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2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명확한 제 삶의 답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전 여전히 사람과 사회에 대회 다소 회의적입니다. 암담한 사회적, 정치적 흐름 속에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권연대 숨에서의 활동을 통해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 대한민국 헌법, UN 장애인권리협약 등에 나와 있는 인권의 원칙들을 공부하고 일꾼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내 분노와 생각들을 인권적으로 점검하고 말과 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대입니다. 신념과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일터일지라도 정형화된 사업들을 진행하다 보면 업무 관련 외 찾아온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보통은 인사 정도만 하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인권연대 숨은 누군가 방문했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과 마주하며 시간을 보내고 대화와 소통을 나누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을 말이 아닌 환대라는 실천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인권의 연결과 실천, 모든 것에 있어서 사람이 중심에 있는 것은 어떤 활동을 하던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도시의 영역들을 인권의 관점으로 돌아다니고 기록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을 보거나 고정된 편견들이 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소각장이 건강권과 직결되어 있으며 불평등이 핵심이었다는 사실, 골목길과 도시 개발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변화를 깨닫게 되었던 기억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처음 한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에서 우진 교통에 방문해 버스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되기 위해서 저상버스 전환이 필요하다는 승무원분들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시청, 국립현대미술관, 시외버스터미널, 충북대학교, 문암생태공원, 음성을 저상버스와 열차 등,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막연히 불편했던 이동이 다양한 권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했습니다. 이동권의 한계와 현실을 구체적으로 느끼면서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상상하며, 기록했기에 뜻깊고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싸워온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평화기행은 항상 즐거우면서도 뭉클하고, 뜨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기에 외롭지 않고 보람차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일꾼에서 인권연대 숨의 회원으로 돌아가지만 계속 숨의 여정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전 또 다른 장애인권운동의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갈 것이며 동료 상담 역시 계속 해 나가려고 합니다. 숨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놓치지 않고 제 삶과 일상에서 기억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불러 주신다면 종종 함께 숨 쉬며 인권연대 숨의 활동에 동행하고 싶습니다. 숨에서 저의 활동을 응원해 주신 회원분들과 선배로써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고 동료로써 저와 함께 해 주신 일꾼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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