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53 봉순이는 봉순이는박현경(화가, 교사) 봉순이는 고등어다. 우리 집에 사는 코리안숏헤어 고등어 고양이다. 이마 아래 얼굴과 옆구리와 네 다리와 발은 하얗다. 이마 위쪽으로 두 귀와 뒤통수를 지나 등허리를 거쳐서 길고 우아한 꼬리까지는 고등어 등 색깔이다. 분홍 코 양옆으론 엷은 갈색 반점이 있다. 수염은 하얗고 길고 빳빳하다. 눈동자는 에메랄드 빛깔이다. 봉순이는 2020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사창동 어느 골목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4개월쯤 됐을 때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골반을 다쳤다. 구조돼서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우리 집엔 기다란 회색 털을 지닌 페르시아 귀족 혈통 왕순이가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 귀부인 왕순이를 처음 봤을 때 꾀죄죄한 봉순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먼 이.. 2026. 7. 24. 장소들 장소들박현경(화가, 교사) 1.상담을 받고 나면 거의 언제나 눈물이 난다. 눈물을 훔치며 도교육청 건물을 빠져나온다. 저 길 건너편엔 버거킹이 있다. 거기까지만 걸어가면 목을 축이며 쉴 수 있다. 아니 숨어 있을 수 있다.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기분으로 겨우 걸어서 버거킹에 들어선다. 스프라이트 제로 라지가 할인해서 천 원이다. 달콤하고 톡톡 쏘고 시원한 스프라이트를 한 모금 또 한 모금 삼키며 남몰래 운다. 그렇게 삼십 분이 흐르면 나는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걷고, 버스를 타고, 또 걸어 집에까지 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얻는 장소, 도교육청 맞은편 버거킹 1층 구석 자리가 나의 명당이다. 2.작업실에 들어설 때마다 안도감에 젖는다. 바닥엔 고양이 털 뭉치와 종잇조각이 굴러다니고, 책상 위엔.. 2026. 6. 25. 답 없는 헤맴, 답 없는 사랑 답 없는 헤맴, 답 없는 사랑박현경(화가, 교사) 1.2024년 1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나의 일곱 번째 개인전 내게 오는 날개>에 담긴 시간이다. 그 기간 나는 전교조 충북지부 지부장-사무처장 선거에 출마해 선거 운동을 하고, 사무처장이 되어 노동조합 활동에 몰두했다. 선생님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교장실도 가고 교육청도 가고 교육부도 가고 국회도 갔다. 성명서를 쓰고 보도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했다. 피켓 시위를 하고, 교육감실을 점거하고, 노숙을 했다. 어떤 일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어떤 일들은 다행히도 해결되었다. 학교에 출근해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어울리던 예전의 생활과는 많이 다른, 내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었다. 새로운 길을 걷는 건 쉽지 않았다. 재미있고 보.. 2026. 5. 26. 이전 1 2 3 4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