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47 먹구름 먹구름박현경(화가, 교사) 어린왕자는 생각했다.‘세상에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난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평범한 장미 한 송이를 가졌을 뿐이야. 그거랑 내 무릎 높이인 화산 세 개, 그 중 하나는 어쩌면 영원히 꺼져 버렸는지도 모르지. 이걸로는 훌륭한 왕자가 될 수 없어.’그리고 그는 풀숲에 누워 울었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필자 번역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초등학생 시절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었고, 그때마다 특히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다. 요즘 자주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위에 인용한 부분이다. 저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저때 당시 어린왕자는 배가 고팠거나, 생리 직전이었거나(엥?), 목이 마른 상태였거나, 잠이 부족한 상태였을 거라고. 그러니 바.. 2026. 1. 26. 기름떡볶이 효과 기름떡볶이 효과박현경(화가, 교사) 0.많고도 많은 일을 겪어 왔지만 올해를 대표하는 장면은 이거다. 1.종일 불안과 분노와 짜증에 시달리며, 언제라도 치솟을 듯한 그 감정들을 가까스로 누르며, 장학사랑 통화하고 교장이랑 통화하고 기자랑 통화하며 이 일 저 일을 처리하던 내가, 드디어 퇴근을 한다. 비는 오는데 우산이 없다. 그냥 비를 맞으며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다. 아까보다 조금 더 굵어진 빗방울을 맞으며 수암골 언덕을 걸어 올라간다. 마침내 집에 도착. 번호키로 문을 따고 들어서자마자 고양이 왕순이, 봉순이가 와다다다 내게로 달려온다. “잘 있었어? 언니 오늘 힘들어. 배고파? 언니 보고 싶었어?” 말을 걸며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 준다. 젖어 버린 외출복을 벗고 목 .. 2025. 12. 26. 내 남자 이야기 내 남자 이야기박현경(화가, 교사) 격렬한 섹스 후에 그 남자가 말했다.“나랑 살아 줘서 고마워요.”나는 대답했다.“고맙긴요. 이건 당신이 밑지는 일이에요.”“아니에요. 나랑 살아 줘서 고마워요.”“아니, 이건 백 퍼센트 당신이 밑지는 일이라니까요.”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자, 나는 고지(告知)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내가 하자(瑕疵) 많은 인간이란 걸 당신한테 분명히 밝혔습니다. 나중에 속았다며 원망 말아요.’2015년 어느 날이었다. 2025년 현재, 나는 여전히 그 남자와 살고 있다. 그에게 지난 10년은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빈말이 아닌 온전한 사실적시(事實摘示)였음을 숱한 체험을 통해 깨닫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 ‘숱한 체험’의 가벼운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발을 굴러 가며 그에게 화를 .. 2025. 11. 26. 이전 1 2 3 4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