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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53

<126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박현경(화가) * 이 글은 그림 ‘삶 26’을 감상하며 읽으셔야 더 재미있습니다. 아래의 QR코드를 스캔하시면 그림 ‘삶 26’을 컬러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축한 어둠 속에서 만났다. 어둠이 그토록 깊고 질퍼덕하지 않았다면, 영영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즈음엔 검고 굵은 빗방울이 하염없이 내렸다. 하늘은 어두웠고 주위는 붉었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씩.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렵고 또 두려웠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불안은 도무지 날 놓아주지 않았다. 무력감이 깊은 늪처럼 내 두 발을 잡아끌었다. 아래로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었.. 2022. 10. 27.
<125호> 어정쩡한 시간 속에 어정쩡한 시간 속에 박현경(화가) ‘거기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최종적인 답을 얻으려고 떠났다. 교사인 내게 비교적 자유로운 기간인 1월,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의 대학교에서 어학 수업을 듣고 지역 노숙인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한 달 동안 현지인들과 부대껴 살며 얻은 결론은, 할 만하겠다는 것. ‘좀 외로울 때도 있겠지만, 살아갈 수 있겠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 일 년간 차근차근 준비하자. 유학 절차를 밟아서 내년에 다시 오자. 그리고 공부하면서 여기 뿌리를 내리는 거다.’ 그렇게 귀국해 2월을 맞았다. 전공에 딱히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간절히 ‘떠나고 싶어서’ 뚫어 온 길. 지금까지의 삶을 벗어 던진 채 훌훌 멀리 날기 위해 수년째 독하게 .. 2022. 9. 26.
<124호> 그르노블을 생각하면 _ 글쓴이: 박현경(화가) “앞으로 그르노블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릴 거야.” 지뻬(J. P.)에게 이렇게 말하며 산 아래로 펼쳐진 그르노블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지뻬를 봤을 때 그는 한 손을 제 가슴에 얹고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28일 오후의 일이다. 2015년 1월 한 달을 프랑스 남동부의 그르노블이란 도시에서 지냈다. 하루 중 절반은 대학교에서 어학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곳은 주거 환경이 취약한 분들이나 노숙인분들이 찾아와 무료로 빨래와 샤워를 하는 ‘뿌앙도(Point d’Eau)’라는 이름의 쉼터였다. 뿌앙도(Point d’Eau)는 우리말로 ‘샘’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샘’에서, 빨래나 샤워를 하러 오신 분들의 이름을 순서.. 2022.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