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53 <129호> 나는 왜 여기에 나는 왜 여기에 박현경(화가) 내 그림들에 둘러싸여 이 글을 쓴다. 프랑스 파리 15구의 한 갤러리. 흰 벽에는 알록달록한 괴물들이 붙어 있고 벌거벗은 내 자신이 나를 내려다본다. 사람 얼굴이 달린 물고기가 아가미에서 꽃을 뿜고, 소년과 호랑이가 물고기를 타고 날아다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통유리문 안을 들여다보고, 가끔씩 들어와 그림들을 자세히 본다. 내게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일 년 전부터 계획해 준비한, 내가 원하던 공간과 시간. 감사하다. 겁이 많은 나는 전시회를 앞두고 불안했다. 작품들을 포장해 위탁 수하물로 비행기에 싣고서 열네 시간 반을 날아와, 네 박스나 되는 그 짐을 파리 공항에서 되찾은 후 갤러리까지 운반하고, 전시 오프닝 전날 내 의도대로 작품들을 설.. 2023. 1. 30. <128호> 감았던 눈을 와짝 뜰 때 감았던 눈을 와짝 뜰 때 박현경(화가)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윤동주,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한 명상을 하고, 뜨끈한 두유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고양이들 아침밥과 물을 챙겨 주고, 고양이들 화장실을 청소해 준다. 요가원에 가는 날은 요가를 하며 땀을 흠뻑 흘리고 집에 와, 천천히 점심밥을 지어 먹는다. 요가복을 빨아 널고 오후 작업을 시작한다. 요가원에 가지 않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작업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시간이 남으면 걸어서 남편의 카페에 간다. 차 한 잔을 홀짝이며 전시 준비 일을 한다. 아침, 저녁, 밤마다.. 2022. 12. 26. <127호> 몸 몸 박현경(화가) 1. 타인의 몸 매주 한 번씩 누드 크로키 모임에 참여해 그림을 그린다. 1분 또는 3분마다 바뀌는 포즈에 따라, 한눈팔 겨를 없이 모델을 관찰하고 선을 그으며 몰입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느끼고 또 느끼는 것. 아름답구나.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구나. 마른 몸은 마른 대로, 살찐 몸은 살찐 대로, 배 나왔으면 배 나온 대로, 안 나왔으면 안 나온 대로, 흉터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여자든 남자든 어떤 성별이든……. 아름답지 않은 몸은 어디에도 없구나. 흔한 레토릭으로 주워섬기는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진심을 다해 증언하건대, 아름답구나.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느끼며 끄덕이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레 ‘나의 몸’으로 향한다. 2. 나의 몸 고백하건대.. 2022. 12. 7.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