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16 일종의 유희 일종의 유희잔디 이제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막 설거지 하려던 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얼른 나가게 설거지 좀 해.” 단전에서 끓어올라 얼굴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어떤 감정. 내내 그 뜨거움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말가진 그릇을 바라보던 기억, 그 감정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애써 감추던 그 때의 나. 그리고 또 하나. 일요일 아침 여유로이 방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찾아 막 비질을 하려는 순간, 마루에서 들려오는 소리. “일요일이니까 대청소 좀 하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방 어딘가에 숨기고 나도 숨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는 마음. 그 마음을 숨기고 “네”, 라고 대답하고 꾸역꾸역 비질을 하고 물걸레질을 하고나서야 말끔해진 방바닥에 누워 긴 한숨을 쉬었던 그 때의 나. 열 몇 살의 .. 2026. 7. 24. 챗님. 챗님.잔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밭 한가운데서 감자 캔 자리에 호미로 살짝 흙을 걷어 올리고 콩 세 알을 넣는 걸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하며 반복하겠지. 그러다 허리를 펴려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하겠지. 누군가는 시를 쓰려고 잔뜩 등을 구부리고 다가올 언어를 찾거나 기다리거나 하겠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아침의 분주함으로 사람을 맞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 한 잔을 만들어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고요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도 친절한 듯 물결무늬 문장 부호 “~~~”를 상대에게 보내는 문장의 끝에 어쩔 수 없이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하나 정도는 넣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조금 전 하안거 프.. 2026. 6. 25. 걷기, 지금이 좋다 걷기잔디 밤공기를 가르며 아들과 걷는다. 집 안에서 과묵한 아들은 걷기를 시작하면 이야기를 어딘가에 쌓아놓았다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풀어놓는다. 나의 아이는 어느 통계에서 ‘쉬었음 청년’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아이에게 들었는데, 그 분류에 의하면 ‘쉬었음 청년’이다. 쉬었음은 일상에의 경험을 잠시 쉬었다는 그 쉼의 완료를 뜻하는 것일까? 지금 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도 그 분류에 넣는 걸까? 생각하다가 찾아보지는 않았다. 자신을 ‘쉬었음 청년’이라고 말할 때 아이가 그 순간 하고 있는 생각, 그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니까. ‘쉬었음 청년’을 제도적으로 돕고자 한다면 그 분류는 그 존재를 돕기 위한 것이니까 그 도움의 동심원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나에.. 2026. 5. 26. 이전 1 2 3 4 ··· 3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