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12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잔디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엄지와 검지를 펴서 길이를 잴 만큼 키가 큰 수선화가 노오란 꽃을 일곱 개 피우고 있다. 태숙이 언니네 방울토마토 하우스 앞에 형님이 심어놓은 수선화, 그 옆에서는 수선화보다 더 작은 체구의 팬지가 딱 한 송이 여리게 피어나고 있다. 수선화처럼 팬지처럼 봄을 기다리듯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겨울햇살이 비추다가 어느 날 봄 햇살이 따스히 다가오는 날을 봄동이 기다리듯 첫 문장을 기다린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아침의 첫 커피를 기다리듯 그렇게 기다린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글이 멈추었는데, 십 년 넘게 보아온 아이의 부고를 듣는다. 하루종일 미루어왔다가 퇴근할 즈음 부러 자세히 그리고 사실을 말해 줄 사람을 찾아가서 듣는다... 2026. 3. 25. 사진 사진잔디 # 1 산 능선에 가지런히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해가 차오르고 산 능선의 나뭇가지 수형은 더 선명해진다. 산 능선에서 하늘을 떠받들 듯 나란히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노을이 질 때 나무를 바라보며 퇴근해 집에 와서 마당에 차를 세운다. 어둑어둑해져서 그때쯤 나무는 또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나무가 거기 서 있다는 걸 안다. 지나가는 구름도 보고, 구름이 변하는 걸 보고, 구름이 흩어지는 걸 보면서 나무는 거기에 서 있다. 아침이면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태양이 노을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펼칠 때도 그 풍경 속에 서 있으며 짙은 어둠속에서 조차 그저 서 있는 능선의 나무. 때론 마음 담아 바라보게 되는 나무, 때론 출근하면서 바쁜 마음에 .. 2026. 2. 26. 설거지 설거지잔디 어제도 했던 설거지를 오늘도 또 하고, 작년에 설거지를 올해도 계속한다. 살아있는 한 나를 위한 설거지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 감사 일기를 ‘감사의 정원’에 적다가 “오늘 나의 환경을 위해 실천한 작은 행동 한 가지를 칭찬해 보세요.”라고 팁이 뜨기에,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밤이 지기 전에 해결한 것 참 잘 했어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설거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걷기는 못해도 매일 빠지지 않는 일과처럼 해야만 하는 숙명의 매일 반복되는 설거지이지만, 설거지에 대한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걸 문득 알게 되었다. 퇴근해서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하나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잠시 쉬었다 설거지를 하고 공부하러 책.. 2026. 1. 26. 이전 1 2 3 4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