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06 어떤 기다림 어떤 기다림잔디 빨래를 널으러 뒷마당에서 빨랫줄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에도 내 등 뒤에서 툭,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홍빛 해가 하나 뒷마당에 깔아놓은 파쇄석 위에 떨어져 있다. 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꼭지를 떼어내고 반을 갈라 조금 먹어본다. 어제 먹은 것보다 엊그제 먹어본 것보다 달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만 먹는다. 먹는 동안에도 아까 해 떨어진 옆자리에 해가 또 떨어진다. 냉큼 주워 조금 맛보고 다시 혼자만 먹는다. 온종일 뱃속에 든 두 해님 덕분에 온기가 그득하겠다 싶다. 그래도 가을은 기어이 돌아오고야 말아서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주홍빛 해의 빛깔을 닮은 하루에 한 번뿐인, 노을이를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피부가 진짜 가을이가 돌아왔나 보다 느끼던 날부터는 퇴근할 때, 동료들.. 2025. 9. 25. 할머니 마음 할머니 마음잔디 매미는 헌신적으로 까만 밤을 환한 울음소리로 채운다. 환한 밤 덕분에 갱년기 증상을 겪는 밤, 슬며시 앉아 매미소리에 기대어 본다. 염색하지 않은 머리카락, 때론 푸석푸석한 피부 그 또한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겹지만 내가 어디에 기대어 서 있는지, 어디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는지 들여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앞다투어 경쟁하기라도 하듯 숨 가쁨으로 따낸 금메달 같은 주름을 나는, 숨기고 싶지 않다. 금메달은 다들 자랑하고, 부러워하니깐. 나의 주름은 수없이 웃은 나의 웃음과 미소의 흔적이니깐. 내가 맘껏 사랑스럽게 여겨주어야지 싶다. 이제 아가야들(갓 태어난 아가야부터 일곱 살 즈음 아가야들)을 만나면 이모나 고모라고 호칭하기보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어떨까라는 말이 주저 없이 툭 튀어나오.. 2025. 8. 25. 여름밤의 이야기 여름밤의 이야기잔디 한밤엔 고요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어둠 속에서 반짝거려요. 별빛에게 소리를 입힌다면 아마도 지금 들려오는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낮의 뜨거움은 어디로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반짝이는 소리만 제 귀에 들릴까요. 뜨거움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여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식탁 주위에 앉아 당신을 향해 이야기를 보냅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더위는 더위대로, 또 비는 비대로 그대로 맞이하고 계시겠지요. 오늘은 저녁 차리면서 뉴스를 힐끗힐끗 보았어요. 화면에 등장하면 고개를 돌리고 싶은 얼굴들, 사건들이 즐비합니다. 평정심을 거실 바닥에 떨어뜨리기가 일쑤예요. 그러다 순식간에 뭉클해지기도 하죠. 산불 때문에 아직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동병상련이라며.. 2025. 7. 24. 이전 1 2 3 4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