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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부추밭 부추밭 잔디 지금의 나는 그저 시골사람이지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의 삶을 처음 시작했던 이십여 년 전 그때, 내 마음에 들어와 충만한 에너지로 채워주는 두 가지 풍경이 있었다. 집에서 나와 어쩔 수 없이 매일 오가며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부추밭과, 모내기를 하기 전 물로 채워진 무논이었다.  허리를 몇 백 번 폈다 접었다 하며 논흙 한 삽 한 삽 떠서, 구멍 난 곳을 채우고 울퉁불퉁한 면은 고르게 흙을 발라놓은 논두렁. 매우 정갈한 도자기 작품처럼 구부러진 논두렁을 매끈한 곡선으로 만드시는 어르신의 작업과 작품을 봄이면 볼 수 있어서, 물로만 채워진 그 논을 밤에 몰래 가서 한참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 논이 있는 마을에 지금은 살지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오가며 모내기철에 바다처럼 빈 논과 논 옆에 .. 2024. 5. 27.
시~~~~작! 시~~~~작! 잔디 기다렸다는 듯이 연두를 한꺼번에 튀겨내던 나뭇가지들은 어느새 연두를 키워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매일 매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을, 만날 만날 꽃을 피워내는 꽃마리를, 아직 어린 연두를 키우는 감나무 가지 끝을 바라보는 일은 즐거움이다. 명치 끝에서 혹은 배 안쪽에서 간질간질한 무엇인가가 생겨나 몸 전체를 가벼움과 자유로움으로 채워주는 순간을 맞이하는 기쁨이다. 여기가 대추밭이야? 제비꽃밭이야? 감탄케 하던 밭에서 이제 제비꽃도 대추나무싹도 같이 자란다. 대추나무 몸에서 연두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봄이 할 일을 다했다고 해석한다. (물론 봄이 여기에 더 오래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란다.)요사이 초록과 파란 하늘의 경계가 한결 더 아름답다. 서로 어우러져 피어나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 2024. 4. 25.
다시, 뒷집 할머니 다시, 뒷집 할머니 잔디 아침에 일어나 할머니 집 마루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쳐다본다. 요양보호사 선생님 차가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지나가는지 지나가지 않는지를 본다. 어~ 오늘은 일곱 시 오십 칠 분에 오셨네. 일찍 오셨구나. 선생님을 하니는 짖지 않고 반기는구나. 내가 할머니한테 가려고 우리 집을 나서기만 해도 짖는 녀석이. 스읍! 열한 시에는 빨래를 널고 요양선생님은 하얀 차를 끌고 가시는구나. 할머니 마당을 쳐다만 보지 말고 할머니께 오랜만에 가볼까? 이따가 가볼까? 이런 저런 마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오후엔 그냥 아무 마음 없이 햇살을 등지고 달래를 캔다. 우리 식구 먹을 거랑 할머니 거랑 캐야지. 한참 캐다보니 누군가 나를 부른다. 거기 있는 거 캐면 어떡 하냐고. .. 2024.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