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01 나에게, 그리고 그대에게 나에게, 그리고 그대에게잔디 “다들 안 온다고 하면 우리 딸 혼자라도 오라고 그래.”라는 문장이 있다. 큰 딸, 큰 애라는 호칭이라 아니라 그냥 우리 딸.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딸이 될 수 있지만, 여기에 오롯이 하나인 우리 딸. 나는 그 우리 딸이다. 유리 같은 마음이지만 유리는 또 우리 딸만큼은 아니어도 다양한 유리가 있으니, 이제 ‘유리 같은 마음’이라 말하여도 방탄차의 유리를 상상할 수도 있기를.어떤 경위로든 두려움과 불안은 내 속으로 들어와 잠식한다. 과거에 내가 경험한 숱한 순간들. 그 순간들 속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가 있었다. 그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은 행동이 되기도, 생각이 되기도 감정이 되기도 하였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가 자라나 혼자 서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그 행동이, 그 .. 2025. 1. 27. 연말결산 연말결산잔디 올해 늦여름, 문득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쓴 커피가 혀에 닿고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거쳐 위장에 도착했을 때쯤, 몸에서 기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이 맛은 스무 살의 봄에 처음 맛본 자판기 블랙커피 맛과 닮았다. 물론 향은 에스프레소 쪽이 짙고 목 넘김도 훨씬 감미로웠으나 스무 살의 그해 봄,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그때, 커피 맛을 잘 모르면서도 햇살 들어오는 동아리방에 혼자 앉아서도, 엄마랑 여섯 시간 떨어진 거리에서 처음 살게 되어 느끼는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낯선 또래들과의 자유로운 대화에서도 백 원짜리 커피가 주던 잔잔한 위로는, 아직 커피보다 삶이 더 쓰다는 걸 알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물론 쓴맛과 함께 어우러진 신맛과 약간.. 2024. 12. 26. 춤 춤 잔디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전에 다니던 성당에 두 번 다녀왔다. 두 번의 장례미사. 한 번의 악수, 한 번의 포옹. 한 번의 봉투와 한 장의 손수건. 한 번의 오열, 한 번의 흔한 눈물. 어떤 죽음은 나에게 깊은 슬픔으로 다가와 가슴이 미어져서 미사가 끝난 후 유가족을 버얼건 눈으로 마주하기가 힘들었고, 어떤 죽음은 나에게 지치고 오랜 고통과의 이별로 다가와 자유로움으로 이어져, 그저 담담히 성당 뒤켠에 서서 눈으로 검은 옷을 입은 유가족의 등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어떤 죽음은 더 이상 그를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 너.. 2024. 11. 25. 이전 1 2 3 4 5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