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 도경
잔디
고등학교 3년 내내 경희와 한 반에서 지냈다. 경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어서 우리는 3번 경희, 4번 경희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 사람은 보통의 키보다 작은 키였고, 한 사람은 매우 큰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우리 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소매와 바지 자락을 걷고 관여하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그런 그를 말 없이 돕거나 지금은 오지랖을 멈출 때야 라고 눈빛으로 기어를 변환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를 때 안전지대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5번 김도경이었다.
김도경은 우리 반에서 눈싸움의 1인 자였는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상대가 눈을 끔뻑할 때까지 결코 눈을 감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자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눈싸움 시작과 동시에 눈감아 버리는 나는 경이에 찬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김도경은 점심시간에도 네모난 도시락에 김치와 밥과 약간의 들기름이 들어간 점심을 먹으면서도 “맛있다”를 반복해서 감탄사처럼 말했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우리 교실에서 바라보이는 햇살이 잘 드는 무덤 옆에서도 자주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 있곤 했다(어느 날엔 나도 따라가서 하늘을 보았다). 쉬는 시간에 구름의 모양이 조금 신기하다 싶으면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구름 뉴스를 전하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걸 먼저 보고 와서 두 경희에게 소식을 들려주었으며, 누군가가 주말에 머리카락을 조금 달리하고 월요일에 등교하면 그걸 알아보고 찬탄하는 자였다. 김도경의 놀라운 능력은 두 경희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느껴서 반 전체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다가가서 사오정처럼 엉뚱하게 어떤 한 문장을 말해서 그 묘함의 방향을 아예 다른 쪽으로 틀어버리는, 묘하게 딱 들어맞는 한마디를 하여서 모두를 한바탕 웃게 하고, 다시 일상의 편안한 흐름으로 바꾸어주는 말을 하는 정말 놀라운 능력을 지닌 자가 있었다. 아, 그의 능력은 기억나지만 그의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 애석함이라니. 그렇게 매일 만나 밤 열 시까지 깔깔거리거나 조용한 야자시간에 별것 아닌 것도 쪽지로 비밀스럽게 마음을 나누던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
어떤 책을 읽다가 결국 우리가 마지막 숨을 들이쉴 때까지 가져갈 수 있는 가치는 호기심과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5번 김도경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의 사오정 같은 면이 지금 생각해보면 ‘알잘딱깔센’을 발휘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삶에서 진지한 흐름이나 공감이 필수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재미와 유모가 위로나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내기도 하니까, 5번 김도경의 ‘알잘딱깔센’은 그 시절 그 교실에서 삶에서의 소소한 경이감이나 즐거움, 웃음이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걸 가볍게, 개성 있게 건네었다고 지금 생각한다.
국어사전에서는 호기심을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 정의하고 있다. 경이는 ‘놀랍고 신기하게 여김. 또는 그럴 만한 일’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경외심』의 저자 대커 켈트너 일상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삶 속의 소중한 순간들을 되새기기’, ‘산책 중에 주변의 작은 아름다운 것 두 세 가지를 눈여겨 보기’, ‘매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안에 깃든 경이로움을 느끼기’, ‘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헤아려보기’, ‘내가 먹는 음식의 소중함을 기억하기’,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등의 감사 루틴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일상에서 더 자주 감탄하고 더 자주 마음을 열어 더 자주 ‘경외’와 ‘경이’가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걸 발견하기를 권유한다. 일상에서 경이와 경외의 순간을 자주 발견하다보면 행복감으로 우리 자신을 물들이는 기회를 더 자주 만날 수 있다고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유하고 있다.
더 자주 꽃향기를 맡고,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이 얼마나 빨리 생성되고 흘러가고 흩어지는지를 보고, 더 자주 밤하늘에 별이 선명히 떠 있는 걸 보고, 더 자주 호수의 물이 햇빛과 함께 윤슬로 반짝이는지를 보고, 더 자주 큰 나무 아래에 서 보고, 더 자주 누군가 다른 타인과 작은 친절을 주고받는 걸 목격하고, 더 자주 ‘우와’, ‘와~~~!’ 하는 감탄사를 말하고, 더 자주 몸을 흔들고, 저 자주 발뒤꿈치를 만지며 고맙다고 말하고, 더 자주 나와 외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고, 더 자주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걸 느껴서 더 많이 마음이 열리고 작은 내가 거대한 나로 확장되는 걸 경험하는 우리는 진정 우리로 점점 살게 되는 것 아닐까.
겨울눈에서 새싹이 나왔다고 “우와~!”하던 김도경의 반짝거리던 눈과 음성을 기억한다. 지금 이때에 왜 김도경이 문득 생각나는지도 어렴풋이 알겠다. 지금 일어나 괜찮으면 경외 산책을 5분이라도 나가보라고 먼 데서 김도경이 나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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