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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사월 편지

by 인권연대 숨 2025. 4. 25.
사월 편지
잔디

 

2025년 자비의 선교사학교 7기로 다시 등록하였어요. 한 달 한 번 두 시간. 침묵으로 있거나 선교사님의 강의를 듣고 묵상하고 마무리할 때 다가온 생각이나 기도, 마음을 나누고 헤어집니다. 가끔 선교사님들이 직접 요리한 스페인 음식을 한 접시 스페셜하게 내어주실 때도 있어요. 마음을 돌보고 몸도 돌보고. 무엇보다 때마다 환하게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선교사님들의 웃음과 포옹이 큰 힘이 되어 제 안에서 스마일 에너지가 됩니다.

 

첫 모임에서 회심(回 心)이라는 주제로 마리아선교사님의 강의를 듣고 에스텔 선교사님의 KINTSUGI 활동을 하였어요. 원래 연결되어 있던 지점으로 돌아섬을 회심이라고 들었어요. 삶속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떤 마음 때문에 사랑, 자비, 자유를 살지 못하는 부분이 금이 간 마음이고, 금이 간(상처 난)마음에서 새어나가는 힘을 돌아보고 인식하고 주님께 맡겨드리는 과정이 회심이라면 그 과정 자체가 회심의 과정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라고 말했던 베드로의 말처럼 마음을 돌려 나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길. 구해 달라는 그 말 속에서는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와 그것을 맞잡는 손과의 협업. 그래서 자유’, ‘치유’, ‘사랑이라는 단어에서도 여전히 머물러 계시는 주님을 느꼈습니다. 맞잡아 느껴지는 어떤 에너지. 이어지는 KINTSUGI 활동. 원래의 KINTSUGI는 어쩔 수 없이 깨어진 도자기를 복원하는 작업이지만, 그날 우리의 활동은 공장에서 생산된 온전한 도자기를 보자기에 싸고, 도자기를 망치로 때려 금을 내고 깨진 도자기를 원래의 모양으로 붙이고 금이 간 부분에 금()빛을 입혀주는 작업이었어요. 도자기를 감싸고 있는 보자기는 나를 감싸주었던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나의 직접적인 경험을 가로막고 있는 벽일 수도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자기를 펼쳐 보자기 속에서 깨진 도자기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반갑지 않지만 외부에서 혹은 내부에서 나에게로 온 상처를 상징적인 의미로 부여하기 위해 망치로 도자기를 깨야하는데 쉽사리 망치질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고, 깨고 싶지 않았거든요... 한 번, 두 번, 세 번에도 깨지지 않아 결국 다른 사람이 한 번의 망치질로 그릇을 깨주었습니다. 도자기를 깨뜨리려고 망치질할 때의 그 소리... 아무리 상징적인 의미라고 해도 그날도 아프게 다가왔는데 지금 떠올려도 아프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주거나 받았던 그 상처의 소리들... 조각을 바라보다가 조각의 단면을 퍼즐을 맞추듯 맞추고 너무 작은 조각들은 따로 모으고, 접착제를 연고 바르듯 부드럽게 접착하려고 하는 부분에 바르고 호호 불어 조금 기다린 후 붙이고, 잘 붙기를 기다리고 거칠게 연결된 부분에 모래종이로 문지르고, 부드러워졌나 만져보고 다시 문지르고 이 작업이 가장 긴 작업이었어요. 충분히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난 뒤 접착면에 생긴 금 위에 금()빛 선을 새로 그어주었습니다. 숨을 참아가며 (저절로 참아지는) 새로운 길을 내주었습니다. 새로 구멍도 생겼어요. 그 구멍의 바깥쪽에 촛불을 켜두면 그 구멍을 통해 촛불의 소중한 빛도 새어 들어옵니다.

 

작업하고 난 후 이제 내 그릇이 된 도자기를 바라보니, 공장에서 생산된 온전한 그릇은 상품이지만, 깨진 그릇에 접착제를 바르고 호호 불어가며 붙이고, 그 금에 금빛을 칠하는 과정이 빛이 나오는 상처상처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동시에 느낄 때, 나의 삶이 더 나다운 것, 더 의미 있는 것, 더 새로운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가치 있는 것, 더 정이 가는 것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단어는 흠 없고, 티 없고, 아픔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생긴 상처를 통해 아름다워지는 창조주의 자녀이며, 그의 도구가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임을, 이미 충분한 상태임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아침마다 구름 속에서 다시 새어나와 온 세상을 비추는 저 빛처럼 늘 저와 함께 계시는 어떤 존재께 정말 반갑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 명랑하고 다정한 인사를 저에게도 건네고 싶어졌어요. “안녕! 반가워, 나야그래서 하루하루를 만나면 얼싸안아주는 선교사님들의 함박웃음처럼 살고 싶습니다. 저 자신과 제 앞에 사람들과 한껏 웃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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