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금
잔디
# 봄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화요일 오전. 골목을 걸어 갤러리 마당 구경에 나섰다.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들이 고개를 조금 들고 피어나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눈을 받치고 선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숨 참으며 사진도 찍고 눈 때문에 꽃이 얼지 않을까 걱정도 해보고 내리는 눈 속에 서서 고요히 눈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갤러리 정기휴일이라는 안내글을 보고 돌아서서 집에 가려하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금동이가 다가와 숨을 거칠게 쉰다. 곧이어 금동이를 부르는 갤러리 언니의 목소리. 언니가 정기휴일 안내문을 떼고 “니노씨 커피 한잔 하고 가”라는 엄청 반가운 말씀을 건네신다. 갤러리 한 켠에 바깥풍경이 훤히 보이는 환한 자리에 앉아 언니랑 커피기계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금동이는 갤러리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만, 문은 닫혀있고 언니는 이제 묶어줄게 하면서 금동이집으로 데리고 간다. 금동이는 강아지였을 때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갤러리에 오는 손님들에게 애정을 듬뿍 받았다. 귀여운 강아지였던 금동이는 점점 커서 개가 되었고, 금동이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놀라거나 피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금동이는 더더더 다가왔고, 사람들 중 한 사람인 나는 더더더 금동이가 무서워져 얼음땡 놀이하는 사람처럼 금동이를 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게 되었다. 결국 금동이는 갤러리 뒤 편에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강아지 금동이도 지금의 금동이도 나는 다 무섭다.
오늘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자유로이 꽃밭을 서성이던 금동이를 떠올리다 문득, 생각한다. 어느 순간 예전에 있었던 가슴 철렁하거나 두려웠던 일이 마치 지금의 일처럼 생각 속에서 펼쳐질 때 웅크리게 되는 마음이 나에게는 자주 있는데, 지금의 금동이는 예전의 금동이를 금동이로 여길까, 지금의 금동이를 금동이라고 여길까, 궁금해졌다. 개나 고양이는 오롯이 여기에 있는 현존을 느끼는 기운이나 에너지를 사람에게 준다고 어디선가 읽었는데 정말 그런지 나도 느껴보고 싶다. 데워진 커피기계가 추출해 준 커피로 생강커피(런던커피라고 한다던데)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셔보았다. 생강 향 나는 커피. 따뜻한 맛이었다.
# 아이가 운다. 아침에도 울고 저녁에도 울고 밤에도 운다. 집에서 이십 분 거리의 기숙사이지만 매일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퍼서 운다는데... 그래서 삶의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문자로도 마음을 묻고 대답을 주고 받는다. 매일 가까이 있었지만 가까이 있을 때는 발견하지 못하던 어떤 것을 문득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 어제도 울었는데 오늘도 또 눈물이 나냐고 아이를 채근하지 않는다. 적응하느라 그래, 적응하면 다 괜찮아질거야, 라고 우리 둘 중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눈물 흘리다가도 웃기면 웃음이 나는 대로 그냥 거기에 같이 머문다. 오늘 아침 심장은 어제보다 뜨거운지 빨리 뛰는지 천천히 뛰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심장을 느껴본다. 심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짐작해 보거나 들려오는 이야기를 받아 말하다가 아이의 등교 준비가 끝나고 등교 시간이 되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아이는 말하고 “그래 잘 다녀와. 이따가 또 이야기 들려줘”라고 나는 말하고 두려움을 어깨에 메고 각자의 길을 걸으려 나선다.
퇴근하고 식구들 저녁을 챙긴 후, 주섬주섬 간식을 챙겨 아이를 만나러 가는 수요일 밤을 보내기도 한다. 일주일 중간쯤 엄마 얼굴을 보고 나머지 날을 견딘다는 아이. 자신이 선택한 것을 두렵지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거나 그 한계 안에서 자유로이 두려움을 탐색하고 그런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구체적인 리추얼을 정해 본다. 해 보고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다른 행동도 또 찾아보고 다시 해보고……. 내가 어찌 하기 어려운 외부를 조정하려고 할 때 커지는 내 내부의 두려움을 보듬으며 두려워하는 것이 실재적으로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고 두려워도 괜찮다고 말해주며, 두려워하는 나를 누르거나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 때론 가만히 바라보아 주고 때론 달콤한 것을 먹여주고, 때론 두려움이 휘몰아치는 순간 마음을 빈 공책에 적어 두려움의 실체를 확인하며 알아보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는 아이와 진실로 함께 걷는 지금. 문득 여기에 있는 나를 본다. 나를 바라본다. 내가 그토록 그리웠던 그 시선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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