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우수가 지나가니 밤이면 달이 점점 커지고, 아침마다 맞는 공기 속엔 봄이 숨어있다. 남편은 동트기 전 홀로 산책하다 돌아와, 식구들 추울까봐 난로에 둥그런 땔감을 넣으면서는 “봄이야, 봄”을 이야기한다. 산수유나무 노란 꽃망울 터트릴 그런, 봄이 여기 있다. 목련 겨울눈을 보며 하얀 꽃을 그리며 설레는 마음이, 여기 있다.
그 봄으로 건너가는 이 시절,.. 겨울동안 우리가 지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재미난 옛날 이야기하듯, 가볍게...
아침엔 종종 해님이 떠오르는 시간까지 조용히 누워있기도 하고(한밤중에 누군가 일어나 난롯불이 커지지 않도록 땔감을 한 개씩은 넣고 보살펴야하니...), 밤엔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 다리 쭉 펴고 누워 영화를 한 편씩 보고, 잠깐씩 영화 이야기도 나누었다(아이들은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추가 설명과 느낌 공유 차원...).
투덜거리는 두 녀석과 아버지를 도와 함께 하겠다는 두 녀석을 몰아 땔감을 하고, 나르고, 쪼개고, 말리고, 차곡차곡 쌓았다. 매일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불을 바라보고, 매일 난로에 땔감을 넣었다. 매일 하는 잔소리처럼 일상은 반복이다.
우주선처럼 생긴 난로 옆에 달린 동그란 간이 오븐에 고구마를 넣고, 고구마 익는 냄새를 기다렸다가 서로 먹겠다고 다투며 군고구마를 먹었다. 밤고구마만 골라 구워먹다 자색 고구마만 남겨지자, 자색 고구마는 눈 감고 먹으면 밤고구마 맛이랑 똑같다며 얼르거나 꼬득여 먹이고 먹으며 보랏빛으로 변한 혀를 내밀고 들이밀곤 하는 놀이를 즐겼다.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와 쌓아놓고 배부르게 읽거나 책 읽어주는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듣다가 키득거리고, 책 속의 일이 옆집에서 일어난 일인 것 마냥 수다도 하고, 문자로 퀴즈 정답을 보내 맞추고 당첨되어 커피를 받아먹었다.
눈 내리는 바람 부는 날, 비료 푸대와 따뜻한 마실거리를 등에 지고 눈썰매를 타러, 눈 쌓인 길을 걸어 마을 뒷산에 올라, 비스듬한 길이 나타나기만 하면 엉덩이에 그것을 깔고 타며 탄성을 지르거나 깔깔거렸다. 추운 날씨에 손이 곱아 아프다며 울면서도 썰매타기를 멈추지 않는 막내를 보며 애타기도 하였으나...
달빛 밤엔 이제 막 뒷간에 오가기 시작하는 딸아이, 뒷간을 사용한지는 꽤 되었으나 밤에 홀로 뒷간 가기를 주저주저하는 큰 녀석들을 따라 나갔다가 청명한 밤하늘, 산뜻하게 빛나는 별빛, 머릿속을 맑게 해주는 상쾌한 바람에 취하는 복도 누렸다.
마지막 추위에 꽁꽁 언 강에 내려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썰매를 타거나 커다란 통에 들은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며 타다가, 다리 밑에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 마냥 들통을 삼발이에 걸고 불을 피워 공동체라면을 끓여 호호 불어 먹으며 함께 웃기도 하였다. 삼천오백원의 행복이라니...
고구려시대 폴더 폰을 사용하는 부모를 보며 미운 눈을 보내는 큰 아이와(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왜 폰 안 사줘?라는 말을 눈빛으로 쏘는 아이에게 휴대전화가 필요하지 않음에 대해 연설만 하니...), 나와는 감정 변화의 폭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는 작은 아이와, 때때로 공룡처럼 큰소리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새초롬해지는 때가 많아진 딸아이와, 하루 종일 쿵쾅거리고, 살포시 다가와 뽀뽀를 건네는 막내아이와 씨름하였다. 억지도 부리고, 사자 소리로 누르기도 하고, 기린 엄마가 되어 조곤조곤 대화하기도 하였다. 때론 웃고, 때론 웃다가 배가 아파서 눈물을 닦기도 하고... 방학인데 먼 마실 한 번 데리고 가거나 보내지 못해 미안해하기도 하고...
애써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그저 눈 마주치면 오롯이 지금을 함께 하고 싶었던, 겨울을 겨울답게 보낸 그 시절이 흐르고 있다. 겨울 햇살이, 바람 없이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깊숙이 따뜻한 기운을 주듯 그렇게, 마음에 따스함으로 기억될 시간이 아지랑이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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