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무성해지면서 나는, 아주 작은 벌레를 예의 주시하고 무서워하고, 저녁 먹기 전에 아이들을 씻기면서 아이들의 몸을 관찰하고, 행여라도 아이들의 몸에 붙어 들어온 작은 벌레가 있으면 조심스럽게 그를 잡아 거칠게 없애고, 숲에서 빨리 걷기를 아이들에게 재촉하고 풀에 스치지 않기를 주의주고 그러고 있다. 숲에 사는 것을, 자연에 가까이 사는 것을 감사하며, 한편으로는 자연을 무서워하며 그리 지내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그 작은 벌레일까? 작은 벌레에 물려 가려워하는 아이를 보는 내가, 그 마음이, 어려운 것일까?
이제 너가 너를 보는구나 정진하렴... 응원하는 목소리들... 지금 네가 무척 힘들구나 어디에라도 가서 쉬면서 네 안을 잘 보고 오렴... 배려하는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을 뒤로 한 채, 밤이면 잠 못 이루고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잠기는 밤들을 보내며, 그 생각들을 몸에 고이고이 쌓다가 결국, 앓게 되는 형국에 이르고 만다. 어깨는 큰 곰 다섯 마리가 올라앉는 것 마냥 축 처져 아프고, 머리는 맷돌 한 쌍 올려놓은 것 마냥 무겁고 경쾌하지 못하며, 허리와 다리는 마치 아기 낳을 때처럼 당기고 쑤셔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을 며칠... 일하러 나가서는 아이들 만나는 시간에는 애써 움직이다가, 아이들이 가고 나면 파란 매트에 누워 잠깐이라도 아픈 허리 펴는 시간을 가져야 움직일 수 있는 시간들... 우리집 아이들 학교 갈 준비해서 보내고는 도깨비 나올 것 같은 방을 뒤로 하고 두꺼운 이불 쓰고 까무룩 잠들었다가, 바람 소리에 깨어 잠시, 눈 떴다가 다시 까무룩 잠들고, 세탁기 속에서 깨끗해진 빨래 널고, 다시 눕고, 잠들었다,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지치고 헤매는 꿈꾸다 잠깨고, 아이들 귀가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다 밤이면 다시 끙끙거리며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는..., 빛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늘에 맘껏 숨어들어 그 그늘을 즐기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하는 그런..., 손침 몇 대 맞고, 가족들의 배려에 마냥 쉬는..., 그런 주말을 보내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달빛 환한, 한밤, 홀로, 앉았다.
지금, 오늘,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들... 아이들의 웃음에 웃음으로 화답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들...십자가에 매달린 스승을 삐뚤게 쳐다보며 아무 말 없는 스승에게 고자질하고,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묻다가 그 대답이 들리지 않아 답답함이 풀리지 않아서,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님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며 눈물 줄줄 흘려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 생각하다, 생각하다 억울한 지점에 닿아 울어도 울어도 아픈 가슴... 웅크리고 앉아 마냥 가만히 있고픈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마음에 이끌려가고 있는 생각들... 되풀이되는 원망들... 왜 나를 인정하지 않는가?...잘 지내고 있는데 왜 나를 흔들어놓는가?...몇 년 동안 만나지 않고 살면 이 감정들이 정리가 될까?...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불평들...
그러다 나는 나에게 질문한다. 그들이 나를 인정해야 내가 행복할까? 진정 그들의 행동이나 말이 나를 흔드는 것일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면 나는 정말 고요히 내가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를 수 있을까?...
나를 흔들고 있는 것은 밖에서 부는 바람일까? 나일까? 한 가지의 사건으로, 한 지점, 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내 인생 전체를, 내 전체를 흔드는 것이 과연, 밖으로부터 일어난 일일까?... 원망과 슬픔에서 많은 질문이 떠오르고, 떠올라 난 사실, 여기에 발 딛지 못하고... 그저, 아픈 나를 보는 내가 여기에 있을 뿐, 대답을 원하고 있을 뿐... 질문의 형식으로 독기를 품어내고 있을 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마음 깊은 곳의 나를, 그저 보기만 하는, 내속의 많은 질문들에 대한 그 대답을 초록에게 애원하는 내가, 아프다...
굳이 상실의 이유를 묻지 않아도
삶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당신이, 혹은 내가, 지나가는 배추흰나비로 말했지 그 뜰에서
까다로운 꽃들은 벌만 날아오면 잉잉대고
잘못 자란 나뭇가지를 잘라 주는 동안
상처를 어루만지는 공기의 투명한 손가락들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지나갔지
「시골에서의 한달」 부분, 류시화.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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