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95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세 번째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4. 28.

 

 

진달래꽃봉오리가 분홍색인지 자주색인지를 놓고 아이들이 티격태격합니다. 대화라기보다 서로 주기만하는 것 같은 말이, 마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의 의견이 맞는 듯, 결론이 나려하다가, 그래 보는 사람의 눈이 다르니 그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다를 수 있다며,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는 듯 아닌듯한 끝을 내며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갑니다. 저물어가는 봄 햇살 아래, 꽃빛을 바라보며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것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움임을 다시, 기억합니다. 캄캄하고 긴 터널을 느릿느릿 통과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한시적 무노동 무임금 시간을 살고 있지만, 이 시기를 통해 저를 돌아봅니다. 일상을 침범했다고 여겨지는 질병과 사람의 간극과 관계, 긴 시간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보게 되는 아이들과의 대화와 갈등, 간소하다고 여겼던 살림살이의 어지러움과 소박함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이해와 연결... 여러 가지 생각 사이를 걸으며, 자책과 후회보다는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묻습니다. 거친 숨을 고요하게 쉬고 싶은지, 발을 땅에 딛고 있다는 것을 잊고 둥둥 떠서 살고 싶은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마음의 닻을 지금에 내리고 명징함을 유지하며 살 것인지를...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숲에 산마늘초록잎이 피어나, ‘다시 마음 일으키는 삶을 일깨워주는 듯... 사람이야 어떤 길을 걷고있든, 자연은 섭리대로 자연의 길로 흐르고 있네요. 그리 걷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농부

내가 갖고 깊은 이름. 파란 스머프들 사이에서 농부야~’를 부르는 파파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울려왔다. 그저 소리 내는 말없이 하고 싶은 나의 마지막 일. 사람들도 저마다 작은 텃밭이라도 일구어보면, 농사가 사람을 살리는 그자체이고, 농산물을 그저 생산품으로 여기기보다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대하여 배추 한 포기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땅과 하늘에 기대선 자랑스런 사람.

 

노루오줌

초여름쯤 몽글몽글 분홍빛의 꽃을 피우는 고운 식물에 왜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생각했다. 꽃냄새를 맡고는 곧 동의하였다. 사물과 혹은 사람과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식물.

 

낙서

내 상념의 그림자. 누군가와 통화하며 긁적이는 흔적. 라디오에서 마음에 닿는 단어가 들리면 써놓게 되는 몇 글자.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때 반복하여, 한 줄 긋기로 그리게 되는 장미도 그곳에 있다. 다시 읽게 될 때, 일기를 쓰게 되는 재료.

 

노래

지난해부터 노래가 흘러나오고, 악보로 옮기며 혼자 부르며 울고 웃고 하며 즐기고 아이들과 부르기도 한다. 누가 기한을 주고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어느 날에는 그 곡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 끝이 아플 정도로 두 세시간 한 마디 안의 음을 찾아 헤매인다. 내 안에 도깨비가 믿었던, 혹부리영감의 노래주머니가 있음 참 좋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내가 불러도 누군가 들어도 위로가 되는 노래가 내 안에서 흘러나왔으면 한다.

 

간결

살림은 소박하게,

생각은 가벼웁게,

말은 간결하게 내며 살고싶다.

 

나뭇잎

나뭇잎처럼 가벼운 사람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고, 햇빛 받아 반짝거리고, 천둥에 흔들렸으며, 바람일지 않는 날엔 고요하게 호미질을 하던 그 사람. 앞마당에 심은 수선화가 피어날 때마다, 그는 수선화 옆에 자란 풀을 뽑아주었다. 자식이라는 바람은 그를 몹시도 흔들었으며, 이제 좀 삶이 편안하다 싶을 때, 남편이 쓰러졌고, 누워있는 남편의 병치레 칠년 동안 수발을 들면서도 남편과 웃음을 나누었으나, 그의 작은 몸은 더 작아졌다. 큰아들의 사고라는 천둥 앞에 무너져 스러진 그는 이 주 동안 누워계시다 나뭇잎으로 떨어졌고, 무덤엔 그의 몸보다 크지만, 그의 등허리를 닮은 봉분이 하나 솟았다. 그를 보내는 장례미사에서 주례 신부는, 나뭇잎이 새순을 내고, 자라나고, 떨구고 다시, 나무의 먹이가 되는 순환을 그의 삶에 비유하면서, 허나, 이제 그러실 필요없다고... 자유롭게 날아가시라고 했다. 그의 영혼이 자유로우시기를 기도한다. 늦가을 시골살이를 막 시작했을 때부터, 그의 밥을 참 많이도 나누어 주셔서 많이 얻어먹었다. 밥 먹으러 건너오라는 그의 음성은 따뜻함으로 남았지만, 이제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프다. 그의 음성을 닮은 포근함으로 살아 그를 계속 살리고 싶다. 자유로이 떠나간 그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나뭇잎이 새순을 다시, 내는 지금 그를 기억한다. 햇빛 잘 드는 따뜻한 그의 마당에, 수선화가 햇살 받고 있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