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돌처럼 그냥 거기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은 빵을 만들 듯 만들어져야 하며, 언제나 다시 만들어지고, 또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 어슐라 K. 르귄(Ursula K. LeGuin)
가을 숲에서 하얀 꽃빛을 선사하던 구절초 꽃이, 동그란 초록 잎으로 닮고 싶은 마음을 주던 쪽동백나무의 둥그런 잎이 제 빛을 놓고 시들시들한 지금, 다시 비폭력대화 웤 샵에 참여하여, 강의를 듣는다. 서울이나, 대전, 세종에서 열리는 공부가 내 사는 곳과 가까운 청주에서 열린다하여 기뻤고, 열여섯 명 정원에 다섯 명이 접수를 하였는데, 괴산에 사시는 선생님께서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지역에 씨앗을 뿌리고 싶은 마음으로 강의를 연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목소리를 들을 때, 사람에 대한 사람의 연결과 기여의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그 다섯 명의 사람은 충주에서 오신 세 분, 제천에서 오신 한 분, 그리고, 나. 청주 사람들은 왜 비폭력대화를 공부 안하지? 하다가 청주 분들이 비폭력대화(이하 NVC)를 함께 공부하면 가까이에 서로 기린 친구가 되어주며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다음 기회에는 좀 더 적극적인 권유와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이 강의를 통해, 십 년째 여러 사람들과 자신의 NVC를 나누고 있는 선생님에게 NVC는 명상, 기도, 상담, 그림 그리기, 걷기처럼 삶을 비추는 여러 가지 도구들 중에 하나이며, 명료하고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로 의식의 밝은 쪽도 어두운 쪽도 비추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난 해 봄에 들을 때에는 ‘공감’을 몸으로 경험했다고 한다면, 이번 웤 샵을 통해서는 나의 습관적 반응, 습관 된 표현, 습관이 된 생각에 대한 관찰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나를 향한 비난, 비판, 자책, 상대에게 쏟아 붓는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말로써, 생각으로써 양쪽 다) 판단, 강요, 당연시 하는 말, 책임 회피 등을 통해 잘못을 들춰내는 생각을 하는 나를 얼굴이 벌게지도록 뜨끔하게 보고 있다. 나의 생활 전반에 깔려있는 내 평가의 눈은 어떤 모양새인가를 아프지만,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내담자의 부모, 주변 사람들에게 혼자 공부하면 다시,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기 쉬우니, 서로 도우며 NVC를 연습해보자고 권유하면, 대개 ‘나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를 어떤 틀에 가두려고 하지 마라’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내 속에 들어와 나의 습관이 되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일어나는 비난, 비교, 비판, 강요 등의 습관적, 자동적 사고의 대안으로써의 방법이 NVC인데...
기린 친구가 서로에게 되어준다면 삶이 좀 더 아름답고, 생동감이 흐를텐데... 관계가 , 속이 좀더 고요해질 수 있을텐데...
대화의 두 가지 영역 말하기와 듣기. 말하기에서는 비난 식의 직설적 화법의 솔직히가 아니라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때, 나는 어떠하다(느낌). 왜냐하면 나는 ~이 중요하고, 원하고, 필요해서이다(욕구), 내 얘기 듣고 어때?(연결 부탁)으로 말한다. 물론 관찰, 느낌, 욕구, 부탁, 네 가지를 한 문장 안에 다 담지 않아도 되지만,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를 섞지 않고 나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내 얘기 듣고 어때?(연결 부탁)라고 하는, ‘너의 의향을 묻는’ 나의 의도, 그 의도를, 상대와 연결하고픈 의도가 내 마음에 품고 있는가에, 지금 주목하고 있다. 그저 내 얘기를 상대는 들어야한다 에서 중지되는 말하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에 대한 상대의 생각에 대한 열린 호기심이 나의 관찰 대상이다. 정신을 잃으면, 곧 이 연결의 의도를 잊고 마는 것이 나의 현실이기에...
들을 때에는 너의 고통, 너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대해 관찰, 느낌, 욕구, (부탁)으로 너의 아픈 마음을 듣는다. 그리고 혹시, 슬퍼?, 혹시 서로 믿어주는 것이 중요해? 하는 질문을 상대에게 한다(공감). 내가 물어보아주는 질문을 가지고 상대가 길을 찾아간다고 한다. 공감을 할 때에는 공감하는 능력(기술)과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 두 가지가 필요한데, 공감 기술은 비록 서툴러도 공감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공감할 수 있지만, 공감할 마음 없이 상대를 공감을 통해 내 쪽으로 끌어당기려 사용한다면(공감할 마음 없이 능숙한 기술만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감이 아니고, 상대도 그것을 알아채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저 사람 지금 마음이 뭐지? 하는 호기심과 관심이 공감의 의도이기를 바라며, 공감은 사실 입을 닫고, 귀를 열어 90% 정도는 침묵으로 상대를 온 몸으로 듣고, 정말 말이 필요하다면, 10% 의 추측 질문으로 공감하기를 권한다. 공감의 상대는 자기 자신, 상대, 공동체일 수 있는데, 나의 습관 된 표현과 반응에 대해, 관찰, 느낌, 욕구, (부탁)으로 나 스스로 공감하며, 나 자신으로의 회복을 통해 가볍고 홀가분하고, 즐거운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를 오랜 만에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호기심을 갖고, 별 말없이 듣는다. 그러면서 나를 향한, 상대를 향한 무거운 ‘비난’으로 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간단한, 수학 공식 같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문법 공부하듯 새로운 문법을 반복하며, 내 안의 의식을 보살핀다. 외부로부터, 혹은 외부로 온 것을 가지고 휘두르는 어떤 것으로 인해 내부로부터 파생되는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폭력을 보듬는다.
간단하고, 소박하지만, 숭고한 빛을 마음에 남길, 그리하여 다시 살아갈 힘을 낼 에너지를 주는, 마음과 사고에 약간의 틈과 여유를 열어주는 도구를 만난 지 십 오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 언어를 ‘새롭게’ 배우는 나를 품어 안고, 마알간 마음과 얼굴을 다시 회복케 하는 말과 의식을 일으키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비난하고 싶지 않아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아서, 비난의 세계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가, 나에게 중요하고,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말하는 나로 살고 싶어서... 너에게 중요하고,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그려주고파서(너가 원할 때)... 그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나에게, 그리하여 진정한, 깊은 연결을 꿈꾸는 나는, 침침한 나의 눈에 돋보기를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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