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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89호> ‘ㅁ’ 미음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 마타리.

꽃마리나 꽃다지가 봄을 알리는, 아주 작아, 허리를 구부려 낮은 자세로 보아야 볼 수 있는 꽃이라면, 마타리는 키가 커서 마주 보고 서서 볼 수는 있으나, 노란 꽃망울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꽃이 작아 자세히 보려면, 마음 먹고 들여다 보아야 볼 수 있는 여름꽃이다. 여름 바람에 노란 빛으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이제, 씨앗 맺었겠다.

 

# 미음.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 먹을 수밖에 없는 멀건 음식. 이 음식을 먹는 사람은 이 음식의 상태와 비슷하여서 회복을 기대하며, 옆에 있는 사람이 이 음식을 억지로라도 떠먹이면 마지못해 넘긴다. 연약한 사람이 먹는 연약한 음식. 정성들여 오래 끓여야하는..,

 

# .

무는 그 어느때보다 가을무가 시원한 맛이 돈다. 김장하고 나서도 무가 남는다면 땅 속에 묻어놓고 겨우내 하나씩 꺼내 반찬으로 먹다, 겨울 밤 출출할 때 깎아먹기도 했다. 무를 얇게 채 썰어 고춧가루와 버무려 생채를 만들어 먹어도 맛나지만, 적당한 굵기로 채 썰어 소금에 약간 절여, 들기름과 볶아 뚜껑 덮고, 약한 불에 한참 두면, 뽀얀 물도 생기고, 아주 순한 반찬이 된다.

무나물. 따뜻할 때 먹으면 더욱 맛있고, 마음도 따뜻해진다. 어른들은 즐겨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외면하는 반찬. 아이들은 이미 따뜻하여...

 

# 마늘.

곰이 오랜 시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그 매운 맛. 용기가 없어 날 것으로는 먹지 못한다. 냄새가 무섭기도... 신기한 것은 양파처럼, 익히면, 은근한 단맛이 돈다는 것. 불과의 화학 작용을 나는 잘 모르겠으나, 뜨거움을 겪고 나면 단맛이 난다는 자체가, 순화된다는 것이 내 마음에 흥미로운...

 

# 마땅히.

당연히처럼 사람을 오만하게 하여 상대를 지치게 할 수 있는 태도.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 중에 마땅히 일어나는 일은 없지만, 도가 지나치면 상대를 미치게 하는 영향을 끼치는... 세상에 마땅한 것, 당연한 것, 거저인 것은 없다. 그저, '고마움’.

잊지 않고 싶은...

 

# 마흔.

마흔에 막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아홉 살. 마흔의 지점에서 오랜 시간 걸어왔고, 많은 경험을 깊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열일곱 열여덟 쯤에서 서성이고 있는 듯한 내 기억을 가끔 본다. 그곳에 무엇을 두고 왔을까... 그때에 나는, 무엇이 기뻤을까? 혹은 무엇이 슬펐을까?...

 

# 물고기.

물에 사는 꼬리지느러미를 달고 있는 아가미로 숨 쉰다는 그 생명체를 '물고기라고 부르다 어느 날에 문득 생각났다. 그저 고기라고 부르면, 물고기는 참 슬프겠다.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해석만 존재하니까. 내가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던 것처럼...

 

# 마디.

늙어가면서 아픈 곳.

늙어가면서 소리가 나는 곳.

늙어가면서 굵어지는 곳.

늙어가면서 더욱 움직여야 할 곳.

 

# 맑다.

맑은 장국. 맑은 소리, 맑은 하늘.

왠지 가을에 가까이 있는 것 같은...

 

# 마라톤.

이제야 갖게 되는 꿈. 뛰어보고 싶다. 허나 뛰려면, 걷기부터 일년간은 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에고-.

 

# 마감.

원고 마감 날은 한 달에 한번씩 어김없이 다가온다. 나이처럼.

두렵지만, 직면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준비가 있어도 준비가 없어도 허둥거리는 며칠. 삼키고 나면 홀가분하고. 다시 맞으면 새로운 긴장...

 

# 마당, 마루, 마을.

다르지만, 넓고 넓어서, 어떤 사람이든 사람을 다 품어줄 것 같은...

 

# 마음

마음결, 마음껏, 마음 놓다, 마음대로, 마음 내키다, 마음먹다, 마음보, 마음씨, 마음 속, 마음잡다, 마음 아프다, 마음 졸이다, 마음 죄이다, 마음 태우다, 마음가짐, 마음 쓰다. 마음에 들다, 마음에 걸리다, 마음에 그리다, 마음에 떠오르다. 마음에 새기다, 마음을 가다듬다, 마음을 살피다, 마음과 관련된 많은 단어와 표현이 있다. 영어로는 mind, heart, sympathy, will로 표현되기도 한다. 영어의 마음 표현 중에 heart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기억한다. 공감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상대를 혹은 자신을 들으려면, hearthead-ear-toe 로 여기고 보아, head(머리)부터 toe(발가락)까지의 큰 ear()로 들으면 좋겠다는 설명이었는데, 듣는 순간 내 몸 전체가 커다란 심장이 되면서, 그 바깥은 귀의 형체가 되는 상상을 하게 된 표현이었다. 서로를 그렇게 들을 수 있다면, 서늘한 가을에 따뜻한 연결이 때때로 일어나겠다는 훈훈한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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