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희가 있었지.
내 인생에, 초등 3학년 때부터 스무 몇 살까지 미희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미희와 나는, 농구부에서 교대로 센터 역할을 했다. 농구부 언니들에게 경기 진행을 능숙하게 못한다고 혼날 때에도 서로 위로해 주고, 더운 여름 날, 순발력 향상 훈련한다고 왼쪽으로 뛰다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으로 뛰는 것을 한참 한 후 숨이 헉헉 거릴 때에도 조금만 더 참자는 눈빛을 주고받던 미희. 이런 저런 연유로 6학년이 되어서는 농구부에서 나와 서로의 집으로 마실을 가서 떡볶이를 해 먹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보며 깔깔거리던 그때... 미희네 집 뒷마당엔 오늘처럼,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있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 놀러오면, 집에서 붕어빵 봉지를 접는 엄마도 계시고 그 옆에서 도란거리는 동생들도 있었지만, 미희네 집에는 늘 미회와 나만 있었다. 미희보다 스무 살 많은 오빠와 새 언니는 사진으로만 만났고, 미희가 어릴 때 돌아가신 엄마도 사진 속에, 연세 많으신 아버지는 가끔, 아주 가끔 마주칠 뿐이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미희네 집에 가면 설거지하면서 그릇의 안과 겉을 벅벅 문지르던 나... 그것도 미희가 눈치 챌까 두려워하며 미희가 딴전 피울 때... 미희네 집 그릇은, 나에게는,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혹여 미희에게 상처가 될까봐... 미희네 집에 다녀온 후 나는 엄마에게 묻지 못했다. 미희네 집 그릇은 왜 겉쪽은 찌든 얼룩이 짙게 끼어있는지... 엄마가 없어서 미희는 너무나 외롭고, 슬픈 데 가끔 아버지가 돈 벌러 멀리 가셔서 집에 오지 않으실 때 혼자 괜찮을지... 미희와 중학교를 달리 진학하여 눈물 흘리며, 헤어질 때까지, 그저 미희네 집에 가면 그릇을, 가끔 외로운 미희의 마음을 닦아내듯, 벅벅 문질렀을 뿐... 미희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본 엄마 친구 아주머니가, 엄마한테 允이 단속 잘하라고 남자 아이와 걸어가더라고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가 야단치려하시다가 ❝엄마, 그사람 미희야.❞하면 오해가 풀리곤 했다. 그 만치 늘 짧은 커트 머리 모양을 하던 그때의 미희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미희를 생각한다. 여전히 마음의 안쪽만 닦고 있는지... 늙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정호승 시, 사랑 부분 인용)를 하고 있는지...
. 인자를 그리워하며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 반, 서른 한 명은, 점심시간에도, 야자시간 전 저녁 식사 시간에도, 늘 숟가락 하나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키 큰 한수녕을 미워하지 않았다. 입안에 쌀알을 넣고 우걱우걱 씹는 일이 한없이 가혹하게 생각되어 식사하고 싶지 않은 어느 저녁, 교실 한복판에 놓인 난로에 데운 도시락을 수녕에게 건네고는, 인자와 어둑한 빈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글 쓰는 사람이 되자고 서성이다 교실로 돌아와 까맣게 공책을 메워나갔다. 마음 허하여 집중하지 못하는 날엔, 작은 공책을 교환하며 낱말 찾기를 했다. 끌림, 끌림, 홀림, 울림. '림'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새벽에는 가을의 약속을 겨울의 약속으로 변경했으며, 꽃병 속에 그려진 하얀 새는 빨간 부리(안현미 시, 전갈 부분 인용)로 바꾸던 그 놀이를 선생님 몰래,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몰래 교실 제일 뒷자리에서 키득거리며 즐겼다. 인자는 문예창작과에 가서는 여럿이 시를 써서 모은 동인 시집을 보내왔는데,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거미처럼 하얀 시를 지어내고 있었다. 때론 편지로, 나를 서울로 불러서는, 이모친구 이모인 나를 다섯 살 조카에게 소개했으며, 학교 예술제에 초대하여 ‘김광석’ 아저씨가 공연하는 노랫소리를 들려주어, 광석 아저씨가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각자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고, 몸은 헤어졌지만, 해마다 11월 11일, 그 아이의 생일이 되면, 인자가 생각난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새로운 날을 살아가고 있는 인자... 그의 시어들은 어디로 흩어졌는지... 어디로 흘러 갔는지... 문득 그저, 엄마로 살고 있는 그 아이의 안부를 묻고 싶은, 초록 그늘 시절...
상주는 기억을 벗어났을까...
고등학교 시절, 여학교와 남학교가 넓고 깊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있던 그때...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함께 공부하고 너 나 없이 함께 축구하던 친구들이 다르게 보이고, 심지어 남녀로 나뉘어 학교를 다니게 되어, 서먹함이 나날이 배가 되던 어느 날, 지역 도서관 개관 축제에서 학생 백일장을 함께 준비하던 상주. 친구들이 떠나간 고향에 남아, 군청에서 혹은 읍사무소에서 일하며, 고향 사람들을 지키던 상주가 큰 사고로 아내도 아이도 몰라보는 몸이 되었을 때, 동료들의 도움과 배려로 사무실 한 켠에서 간단한 업무 처리하는 보직으로, 여전히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는, 상주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 얼굴 모르는 상주의 아내가, 상주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위로의 말을 건네러 차마, 가지 못했다.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나희덕 시, 오분간 부분 인용)고 상주가 생각하고 있을 때조차... 아버지가 상주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실 때에는 종종 그의 안부를 여쭈어 듣기도 하였는데...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나는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나희덕 시, 오분간 부분 인용) 무수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상주는 기억을 회복했을까... 기억나지 않는 새로운 기억들로 일상을 다시, 만들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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