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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84호> 봄 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수탉

너는 밤에도 소리를 내고, 낮에도 소리를 내고, 새벽에도 소리를 낸다. 아주 큰 소리를. 어느 때는 듣기 어려운 소리를. 홀로 있는 너를 보며 나는, 때로는 왕따 당하고 있는가 하기도 하고, 때론 혼자 있기를 즐기는구나 여기기도 한다. 너의 목청소리를 어느 때는 다른 수탉의 소리와 다른 소리를 내고 있고나 생각하지만, 어느 때는 더 멋진 소리를 내려고 연습중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냥 너는 너를 살고 있을 텐데, 너의 소리를 들으면서, 닭장 한 모퉁이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소리 내는 너를 보며, 나는 너를 나로 여기기도 하고, 세상일을 너에게 빗대기도 하며, 많은 생각을 한다.

 

식구들이 먹다 남긴 음식물, 채소 부스러기를 들고 닭장에 들어간다. 꼭꼭꼭 소리를 내며, 닭은 나와 반대편 쪽으로 이동한다. 들고 간 것과 쌀겨를 흩어주고는 알둥우리 속에서 알을 꺼낸다. 따뜻하다. , 난 따뜻한 알을 가져가는 차가운 사람인가……. 차갑다. 아직 품고 있진 않구나. 제 자식 먹인다고 남의 알을 훔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미 닭도 모르는 체하는 동안, 뚫어져라 나를 보기 전에, 얼른 도망가야지 한다. 이 알을 먹고 식구들이 제 냥껏 세상을 살아가기를…….

 

둥지

지붕아래 작은 틈새로 몸집 작은 박새가 하루 종일 입에 이끼며, 보드라운 무언가를 물고 왔다 갔다 한다. 마루에 그 부부가 떨어뜨린 부스러기가 쌓인다. 며칠 그러하더니, 며칠 잠잠하다. 알을 낳은 것일까? 며칠 안보이다 가까이 온 새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둥지 만드느냐고 살이 엄청 빠졌네...” 엄마 새도, 아빠 새도 매에게서 아가들이 안전한 곳을 찾느라, 그곳에 둥지를 만드느라, 애쓰고 있구나... 저마다 세상에서 사느라 애쓰는 봄이다.

 

초록

초록이 하루하루 다르다. 지난 주 목요일에 마당에서 바라보던 앞산과 오늘의 앞산이 확연히 다르다. 생명을 품고 마치 죽은 것처럼 고요하던 나뭇가지에서 초록봉오리가 움트고, 봉오리가 조금씩 커지고, 드디어는 봉오리가 열리고, 열린 봉오리가 피어나고, 자라나고 또 자라나고, 그 과정이 마치 어떤 일을 내가 만났을 때, 몇 초안에 만 가지 생각이 피어오르듯, 하루 안에, 이틀 만에 벌어지고 있다. 생명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그 초록 기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오늘의 초록이 어제의 초록이 아니듯,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 오늘의 나의 상대가 어제의 나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는 눈이 내 마음에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면, 내 생각에 내가,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텐테...

 

공통점

우리 집에 아홉 살 나고, 열한 살 난 아이 둘과 한 달에 두 번 노래 부르러 읍내에 나간다. 기타 치는 선생님 두 분과 열 명의 아이들이 목청껏 노래 부르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부르며 내 마음도 활짝 펴지는 데, 노래 부를 때 아이들의 얼굴에는 정말, 웃음꽃이 피어난다. 아이들도, 나도 기다려지는 시간... 집에서도 아이들은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고, 나도 덩달아 흥얼거리며, 숲을 오가며 생각하는 노랫말과 노랫가락을 음성녹음하기도 하고, 더듬더듬 음악 공책에 오랜만에 음표를 그리기도 하며, 우리들의 노래를 만들어 우리들끼리 부르고, 때론 수줍게 선생님께 내밀어 모두가 함께 부르기도 한다. 노래에 즐거운 일상, 자연이 주는 느낌, 때론 서로의 외로운 뒷모습을 담기도 한다. 어제 아이의 노랫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이 문장이 다른 사람에게서 아이에게 왔든, 아이 안에서 피어났든, 아이의 음성으로 들으니 내 마음이 일렁였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려면~, 내가 먼저 괴로운 거야~~

 

꽃봉오리와 피어난 꽃

그 한 존재를 오래 들여다보고, 쪼그려앉아 들여다보고, 고요히 들여다보고... 그러다 4월에 쓰러져간 여성들, 4월에 돌아간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일상을 꾸역꾸역 살고 있을 사람들을 기억한다. 미약하지만...

 

죽은 공간

친구와 망초, , 홑잎, 진달래꽃을 뜯으며, 친구가 일상에서 하고 있는 비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설거지하며 물을 트는 세기와 마음의 여유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음에 담는다. 그리고, 어느새 잊어버린 나의 습관을 다시, 일으킨다. 먹을 수 있는 물로 설거지하고, 세탁하고, 씻는다는 것을 스스로 잊고 살았는데, 다시 그물을 소중히 여기며, 아껴 쓰는 습관과, 생각을 되새긴다. 물이 흐르는 양과 속도를 천천히 하니, 설거지를 빨리 서둘러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설거지 자체를 즐기고, 설거지 하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도, 물을 잠시 끄면 되니, 서두름과 방해라는 생각도 내려놓게 된다. 마음자리에 여유가 피어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삶의 공간에 죽은 공간을 만들라는 문장이 특별히 기억에 더 남았다. 옷과 사물을, 그 옷과 사물에 담긴 이야기, 마음과 연관지어, 미련이 남아 버리거나 순환하지 못하는 나의 오래된 버릇이 있는데, 순환에 더 마음을 두니, 죽은 공간을 만들 수 있고(아직 미흡하지만) 그 공간이 나에게 여유와 흐뭇함을, 그리고, 친구가 말한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하고 그 충분함은 당당함으로까지 이어지는 사고(思考)의 과정을 경험하였다. 더 많이 비우고, 더 깊이 당당해지고 싶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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