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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92호> 하루 하루 감사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1. 8.

 

요즘 나는, 하루 하루 아홉 사람과 감사 일기를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와 연결된 타자들과의 감사를 주고받으며, 감사할 것을 찾기 힘든 날에도, 마음 저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는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 이렇게 감사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이것을 감사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감사함으로써 나에 대한, 상대에 대한, 세상에 대한 시선을 회복하거나 복원할 수 있다고 배웠다. 감사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의미가 여러 가지 있는데, 태어나면서 가졌던 자연스러운 본성을 회복하는 기회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시선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작업이고, 내 안에 있는 살아있는 에너지와의 연결이 일어나는 만남이며,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선물을 발견하는 시선 회복의 과정, 내가 받은 축복에 대한 발굴이라고 들었다.

감사를 아래의 내용으로 하면 더 순수하고 편안하게, 자신과 혹은 상대와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거나 내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구체적인 말이나 행동, 내가 고맙게 여기는 나 자신의 성향이나 기질이 나타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나 말, 내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준 자신 혹은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떠올리고, 그 말이나 행동으로 충족된 나의 욕구,need,를 찾아보고, 그것을 생각할 때의 나의 느낌을 떠올려보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위의 내용으로 감사를 표현하기가 어렵거나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그저, 몇 단어라도 감사를 표현해보아도 좋다.

이제 나를 지나가는 해를 마무리하며, 변함없이 다가올 새로운 긴 시간동안 푸근한 감사의 옷을 입고 지내고 싶어서, 그간의 감사를 옮긴다.

 

§ 고마움 첫 번째.

쓰러진 벼를 세우는

할아버지 허리가

쓰러진 벼를 닮았다.

- 다시, 세우기

이 풍경을 보고 삶에의 기운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음에 감사. 쓰러진 벼가 나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그 벼를 일으키시는 어르신도 나처럼 여겨져 울컥하지만, 보살핌의 대상이기도 하고, 보살핌의 주체이기도 한, 나를 본다. 이 밤, 할아버지께서도 허리 쭉 펴고 주무시기를.

 

§ 고마움 두 번째.

40분을 걸었다. 밥을 짓고, 먹었다.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기타줄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 나를 돌보고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걷고, 먹고, 노래 부른 것에 고맙다. 친구와 연결하고, 정을 나누며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이 고맙다.

 

§ 고마움 세 번째.

가을 하늘에 빨래와 미움을 함께 널었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눅눅해지기 전에, 그 빨래를 거두어준 손길을 보았다.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엄청 큰 배려. 사춘기 시절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열다섯 살 나신 분의 손길과 몸짓에 감사. 가을하늘에서 미움을 거두었다.

 

§ 고마움 네 번째.

오전에, 나에게 무겁게 다가와 어지러운 마음과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듣고, 위로하고, 공감하고, 뒤돌아가는 그의 등에서 당당함을 보았다. 함께 든든함과 당당함을 나눌 수 있어 고마운. 그의 말은 슬펐으나..., 어둠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초승달처럼 고마움이, 사람들 마음을 비추기를... 고마움을 들여다보기 힘든 오늘 같은 날조차...

 

§ 고마움 다섯 번째.

아이와 낙엽을 모았다. 그 낙엽으로 불을 지피고, 방을 따숩게 하였다. 아이와 함께, 가을을 즐기고, 가족과 나를 위해 따뜻함을 공간에 불어넣었다. 아이와 나의 움직임에,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

 

§ 고마움 여섯 번째.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학교에서 나오고 싶다고 으르렁거리다 먹고 싶은 것 집에서 함께 만들어 먹고, 푹 자고, 수다하고 다시 마음잡고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인내에 감사... 밤잠 못자고 걱정하겠지만, 아이의 배움을 지지할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 고마움 일곱 번째.

아이와 함께 라면과 감자전 먹고, 하굣길에 비 오는데 집에 걸어오느라 어땠는지 듣고, 군밤 까먹으며 수다하다, 수학문제 조금 풀고, 함께 씻고, 머리카락 말려주고, 손잡고 함께 나란히 누워 아이는 곤히 잠들고, 혼자 일어나 잠시 고요히 앉아있는 지금, 사소한 일상에 물든다. 무탈한 오늘에 감사...

 

§ 고마움 여덟 번째.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그 존재와 온전함에 감사하고, 타자를 향한 시선과 정성 기울임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어려워도 한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키시는 의지와 신뢰에 감사한다. 인생의 긴 시간 동안 기울여 오신 따뜻한 마음에 무엇보다 감사하고, 그것을 배울 수 있어서 가끔 내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된다.

 

§ 고마움 아홉 번째.

십오년을 사용한 가스레인지와 이별하며, 물건을 오래도록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성향에 감사. 지구에 폐 끼치지 않는 최소한의 삶엔 아직 멀지만, 빌려 쓰는 이 곳, 이 시간, 나의 머무름에 대해 오래 되어 녹슬고 삭은 가스레인지를 보며 생각한다. 긴 시간 우리 가족과 손님의 식사 준비를 함께 이루어준 그 사물께 감사.

 

§ 고마움 열 번째.

영하의 날씨에도, 얇은 검정 후드 집엎을 입고, 안추워하며, 등교하던 아이가, 오늘 드디어 패딩점퍼를 입고 등교. 바라던 차림으로 등교한 아이에게 감사. 그리고 아이의 담임선생님께도 감사. 이제 패딩 입어라 하는 그 말씀을 하신 선생님과 그 말씀을 들은 아이에게 고마움, 안심. 아이가 따뜻하게 등하교할 것을 상상하니, 걱정되어 굳었던 마음이 풀렸다. 또한,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배움을 주는 아이에게 감사. 있는 그대로의 사랑에 대한 일깨움. 그것을 향해 걷도록 일상에서 건네주는 눈물겨운 선물들. 깨어, 그것을 찾자, 받자~!

 

§ 고마움 열 한 번째.

갈등 상황이 있었는데,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상대를 공감하지도 않고(공감하고픈 마음 1도 없었기에...) 내 상태와 욕구만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문을 열고 나와버렸다. 비난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기표현한 것에 감사. 밖으로 나와서는 다리가 후덜덜... 상대가 큰 공룡이었기에...

 

§ 고마움 열 두 번째.

새로 만난 열 살 난 아이와 이야기 나눌 때, 처음 만났지만, 내내 웃으며 대화하고 수업할 수 있어 감사. 바로 전 시간 스케줄 아이와 힘든 수업을 겪어낸 후라서인지 사소한 내용으로 주고받는 대화로도 뭉클... 아이와 이야기하는 동안 옆에 앉아 공감의 고개를 끄덕거리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의 지나온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스무 해 넘는 긴 시간을 사람 곁에서 견디어 온 나의 인내에 아프게 감사. 많은 상황과 어려운 일과 여러 사람들 틈에서 견디어내고, 사람으로 존재하려고 애쓴 나에게 감사.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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