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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93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하나.윤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1. 28.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묻습니다. 계속 쓸까요? 괜한 글로 폐 끼치고 있지는 않는지 거듭 생각해보는 시간... 그 시간을 보내고 여지없이, 일상 속에서 짧게 혹은 깊이 공책에 연필로 서걱거리는 때를 되풀이하며 보냅니다.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어떤 글을 써볼까. 저의 시간과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지나온 마음을 쌓아 당신께 보낼, 지금을 맞습니다. 올해는 자음순서대로 단어를 모아 보내봅니다. 어찌될지 어떻게 풀어갈지 아직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한 가지씩 써내려 가다보면, 그대에게 닿을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어느 시인이 마음사전을 펴내며, 저마다 자신의 사전을 펼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 책을 낸다는 서문을 읽고서는 아~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서투른 바람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재미도, 용기도, 은은한 인내도 필요한 작업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여전히 서투르지만, 그 서투름으로 무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허나 지키면서 새롭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저를 담아낸 단어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그대

너의 이름. 나의 또 다른 이름. 삶의 작은 균열에도 아파하고, 큰 갈등에 당황스럽지만, 내면의 지혜를 끌어 모아 회복의 에너지를 세워, 일상을 고요히 걸어갈 존재. 아름다운,

 

~ 같아요.

조심스러운 다가감. 딱딱하게 단정 짓지 않는 부드러움. 소심하게 내미는 커다란 발걸음. 말하는 사람과 알아채는 사람사이에서 소통이 발생하는.

 

가을 하늘

문득 깨닫는 높이. 그리워하는 내면과 닮은 빛.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과 그것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와 가을하늘과의 경계가 눈부신.

 

겨울 하늘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한다. 함박눈을.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걱정한다. 출근길을. 쌓이는 눈에도 걱정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그리워한다, 나의 그때를. 두려움보다 삶에 대한 용서가 더 깊었던 그때.

나뭇잎을 떨구고 빈 가지로 선 나무, 그 가지마다 내려앉은 서리. 그것과 마주하고 서서 바라본 하늘. 그 경계가 시린.

 

고등어

어릴 때는 좋아했지. 고등어구이. 지금은 더 좋아하지. 고등어무조림. 사실 고등어보다 무를 더 맛있게 먹는.

 

고구마

찬바람 불어오는 날,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엄마랑 호호 불며 먹는 군고구마.

따스하고 달콤한 그 맛. 마음까지 따뜻해져와. 언제까지나 엄마처럼 내 마음속에.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군고구마 노래 가사. 겨울엔 차가운 숲속을 걸은 후에 먹는 따뜻한 군고구마가 언 몸을 녹이는 데 당연 으뜸.

 

과일

과실수에 달리는 열매. 뜨거운 햇빛과 거센 바람과 지나는 가는 구름과 종일 내리는 비를 견디어낸 그것을 덥석 깨물어 먹을 만치 나, 합당할까 망설이는 순간이 있지.

 

거짓말

거짓말을 하는 순간 상대는 그것을 모를 수도 있지만(상대가 거짓이라고 아는 것을 내가 모를 수도 있지만... ),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저, 그 거짓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차라리 위안이기를 바라는 그런 때가 있다.

 

김치

친정엄마에게서 김장김치 독립을 하고나서는 이제 다 큰 사람이 된 것 마냥 뿌듯했다. ~ 내가 이렇게 많은 양의 김치를 해내다니... 사십이 넘어서... 택배로 받은 갓김치며, 고들빼기김치, 깻잎김치, 알타리김치를 우적우적 씹으며 생각한다. 아직 멀었구나. 다 크려면...

 

그늘, 그림자, 구석

흐릿한 이미지, 어두운 이미지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내 마음의 그늘에 앉아 있고 싶고, 내 그림자에 드리워진 까만 빛깔을 그저 바라보고 있고 싶어질 때가 있으며, 마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한없이 쉬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깊은 휴식을 하고 나면, 구겨진 마음이 활짝 펴지기도 하니까.

 

걱정

혼자서 키워가기 보다 때론 표현하면 후련해진다. 그 표현이 상대가 있어 공감을 받아도 좋고, 걱정하는 몸을 움직여 공간을 청소하거나 동네 한 바퀴를 해도 좋고, 빈 종이에 쓱쓱 써내려가도 좋고...

 

기후

자주 말하여지지 않지만, 자주 걱정되는 그것. 그래서 일회용 비닐팩 꺼내려던 손을 멈추어 반찬통을 꺼내고, 일회용 비닐 장갑구입하려는 손을 멈추게 하는, 머리 감으려 샴푸로 가던 손을 만든 비누와 식초로 향하게 하는 말. 나에게서 끝이 아니라 빌려 쓰는’, ‘지켜주는이라는 표현을 떠오르게 하는 긴급하고, 위험한 말. 홀로 깨어있는 밤, 전깃불을 켜기보다 촛불을 켜게 하는 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이번 겨울. 그 어느 때보다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는 단어. 덜 쓰고, 더 아껴쓰고, 더 궁리하고 싶은...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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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묻습니다. 계속 쓸까요? 괜한 글로 폐 끼치고 있지는 않는지 거듭 생각해보는 시간... 그 시간을 보내고 여지없이, 일상 속에서 짧게 혹은 깊이 공책에 연필로 서걱거리는 때를 되풀이하며 보냅니다.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어떤 글을 써볼까. 저의 시간과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지나온 마음을 쌓아 당신께 보낼, 지금을 맞습니다. 올해는 자음순서대로 단어를 모아 보내봅니다. 어찌될지 어떻게 풀어갈지 아직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한 가지씩 써내려 가다보면, 그대에게 닿을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어느 시인이 마음사전을 펴내며, 저마다 자신의 사전을 펼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 책을 낸다는 서문을 읽고서는 아~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서투른 바람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재미도, 용기도, 은은한 인내도 필요한 작업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여전히 서투르지만, 그 서투름으로 무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허나 지키면서 새롭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저를 담아낸 단어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그대

너의 이름. 나의 또 다른 이름. 삶의 작은 균열에도 아파하고, 큰 갈등에 당황스럽지만, 내면의 지혜를 끌어 모아 회복의 에너지를 세워, 일상을 고요히 걸어갈 존재. 아름다운,

 

~ 같아요.

조심스러운 다가감. 딱딱하게 단정 짓지 않는 부드러움. 소심하게 내미는 커다란 발걸음. 말하는 사람과 알아채는 사람사이에서 소통이 발생하는.

 

가을 하늘

문득 깨닫는 높이. 그리워하는 내면과 닮은 빛.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과 그것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와 가을하늘과의 경계가 눈부신.

 

겨울 하늘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한다. 함박눈을.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걱정한다. 출근길을. 쌓이는 눈에도 걱정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그리워한다, 나의 그때를. 두려움보다 삶에 대한 용서가 더 깊었던 그때.

나뭇잎을 떨구고 빈 가지로 선 나무, 그 가지마다 내려앉은 서리. 그것과 마주하고 서서 바라본 하늘. 그 경계가 시린.

 

고등어

어릴 때는 좋아했지. 고등어구이. 지금은 더 좋아하지. 고등어무조림. 사실 고등어보다 무를 더 맛있게 먹는.

 

고구마

찬바람 불어오는 날,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엄마랑 호호 불며 먹는 군고구마.

따스하고 달콤한 그 맛. 마음까지 따뜻해져와. 언제까지나 엄마처럼 내 마음속에.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군고구마 노래 가사. 겨울엔 차가운 숲속을 걸은 후에 먹는 따뜻한 군고구마가 언 몸을 녹이는 데 당연 으뜸.

 

과일

과실수에 달리는 열매. 뜨거운 햇빛과 거센 바람과 지나는 가는 구름과 종일 내리는 비를 견디어낸 그것을 덥석 깨물어 먹을 만치 나, 합당할까 망설이는 순간이 있지.

 

거짓말

거짓말을 하는 순간 상대는 그것을 모를 수도 있지만(상대가 거짓이라고 아는 것을 내가 모를 수도 있지만... ),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저, 그 거짓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차라리 위안이기를 바라는 그런 때가 있다.

 

김치

친정엄마에게서 김장김치 독립을 하고나서는 이제 다 큰 사람이 된 것 마냥 뿌듯했다. ~ 내가 이렇게 많은 양의 김치를 해내다니... 사십이 넘어서... 택배로 받은 갓김치며, 고들빼기김치, 깻잎김치, 알타리김치를 우적우적 씹으며 생각한다. 아직 멀었구나. 다 크려면...

 

그늘, 그림자, 구석

흐릿한 이미지, 어두운 이미지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내 마음의 그늘에 앉아 있고 싶고, 내 그림자에 드리워진 까만 빛깔을 그저 바라보고 있고 싶어질 때가 있으며, 마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한없이 쉬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깊은 휴식을 하고 나면, 구겨진 마음이 활짝 펴지기도 하니까.

 

걱정

혼자서 키워가기 보다 때론 표현하면 후련해진다. 그 표현이 상대가 있어 공감을 받아도 좋고, 걱정하는 몸을 움직여 공간을 청소하거나 동네 한 바퀴를 해도 좋고, 빈 종이에 쓱쓱 써내려가도 좋고...

 

기후

자주 말하여지지 않지만, 자주 걱정되는 그것. 그래서 일회용 비닐팩 꺼내려던 손을 멈추어 반찬통을 꺼내고, 일회용 비닐 장갑구입하려는 손을 멈추게 하는, 머리 감으려 샴푸로 가던 손을 만든 비누와 식초로 향하게 하는 말. 나에게서 끝이 아니라 빌려 쓰는’, ‘지켜주는이라는 표현을 떠오르게 하는 긴급하고, 위험한 말. 홀로 깨어있는 밤, 전깃불을 켜기보다 촛불을 켜게 하는 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이번 겨울. 그 어느 때보다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는 단어. 덜 쓰고, 더 아껴쓰고, 더 궁리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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