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프미 마흔 두 번 째 : 돌봄 민주주의 / 조안 c. 트론토 지음, 김희강 · 나상원 옮김 : 박영사
내 삶에 더 중요한 것은?
이구원
돌봄이 민주적일 수 있을까? 아니 돌봄이 민주적으로 되는 게 옳은가? 책을 보기 전 내가 가진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돌봄을 제공자와 수혜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주적이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쉽게 말해 가정에서의 부모와 영유아 자녀가 민주적 관계 조성이 가능한가?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 또는 학생, 교사의 관계 등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라 일컬을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 자체로 불평등한 관계이다. 그런 까닭에 일부 장애계에서는 활동지원을 돌봄이 아닌 지원으로 부르고자 하며 난 여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돌봄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어느 정도는 수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느껴진다.
이런 의문에 어느 정도 답을 기대하며 책을 읽었지만 읽고 나서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큰 틀에서 동의한다. 돌봄이 지니고 있는 불평등한 구조를 줄이고 민주적으로 돌봄을 만들어 가기 위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돌봄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성별/인종적인 특권적 배경으로 돌봄에 무임승차(난 이 단어가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해 왔던 자들에게 돌봄 참여의 책임을 부여하는 것, 그러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 대체적으로는 저자의 주장과 논의에 동의한다.
다만 내 삶에 더 중요한 것은 활동지원사들과 주체적 관계를 맺는 것, 내게 주어진 활동지원 시간을 좀 더 유연하고 자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간극이 책에 공감하는 것을 조금 어렵게 만든 거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돌봄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함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를 세워야 할 수밖에 없다.”
이재헌
오랜만에 책을 펼치며 설레였다. 누구나 돌봄을 누릴 수 있고, 누구나 돌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돌봄은 민주적으로 정치에서 논의해야 할 제일 중요한 가치라는 저자의 말 때문이다. 지방 선거가 끝난 지 3주가 지났다. 참정권이 유례없이 침해받았고 일상의 안녕은 무너지는데, 그나마 복지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파편적인 공염불마저 귀하게 들릴 정도로 참담한 선거였다. 이런 허탈함 속에 이 책 <돌봄민주주의>는 정치와 우리 사회, 그리고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사람은 돌봄이 필요하다. 아이와 노년일 때만 돌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치료, 한 끼 식사, 출퇴근, 휴식, 취미 같은 개인적인 것들부터 안전, 안보, 치안 등 공공 영역까지 우리 일상은 타인의 돌봄이 스며들어 있다. 돈으로 구입한 서비스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회 안에서 인간 다운 삶을 위해 누구나 충분한 돌봄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사람을 돌보는 존재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받은 돌봄뿐만 아니라 내가 행했던 돌봄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가족으로서, 연인으로서, 돌봄노동자로서. 그 돌봄에서 난 상호의존성을 깨닫고 존재가치를 느꼈다. 돌봄을 주고받은 경험은 내 삶 속에서 제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돌봄에 참여할 수 없다. 시간도 부족하고 자금도 부족하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고, 성인 자녀도 노부모를 볼 기회를 만들기 힘들다. 동료, 친구, 이웃과도 적절한 돌봄 관계를 맺고 싶어도 여건이 너무 어렵다. 우리 사회의 돌봄 체계는 민주적이지 않다. 여성이나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공공의 돌봄은 신자유주의적 교리에 따라 시장에 내팽개쳐져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를 세워야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사회가 기후위기와 기술적 불평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우리의 보루는 연대이고 돌봄이다. 우리와 사회의 존재 가치는 돌봄일 수밖에 없다.

실패한 시장 민주주의를 돌아 봄 에서부터 돌봄 민주주의로
이은규
돌봄 민주주의 저자 트론트는 말한다. “돌봄 결핍과 민주주의 결핍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이 같은 결핍된 동전을 던져버리고 충분한 돌봄으로 시작하는 동전을 택함으로써 더 충분한 수준의 민주적 참여와 생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 책은 개인화된 시장 민주주의로(신자유주의) 대변되고 그에 세뇌된 줄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개인이나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누리거나 지켜낼 수조차 없으며 불평등한 시장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계획과 실천으로 돌봄 민주주의를 역설하고 있다.
트론트의 계획은 함께 하는 돌봄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다. “세상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은 존재한다. 돌봄을 위한 충분한 자원을 제공하고 우리의 돌봄 책임을 재검토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데 다시 한번 합심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뢰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불평등의 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이를 위한 진정한 자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주눅 들거나 눈치 보는 불평등한 돌봄이 아니라 보편돌봄에 당당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상상하고 함께 실행해보자.
우선 헌법부터 바꾸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돌봄 민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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