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프미 마흔 한 번 째 :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 여자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
지은이 : 김영연 김은하 민가경 박다솜 박혜진 백지은 서영인 성현아 소영현 심진경 양윤의 이경수 장은애 장은영 전승민 전청림 정은경 최다영 허 윤 황유지 / 펴냄 : 오월의 봄
패배와 승리를 잊은 채 또 살고 다시 살아가는 ‘마녀 들’의 이야기
이은규
최근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심독하고 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이 활짝 다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 이 장면을 보며 천 개의 문이 활짝 다 열려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상상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았다.
숨을 불어 넣는 사람, 숨이 되는 사람, 창조하는 사람, 북돋우는 사람, 스스로 거름이 되는 사람, 징검다리가 되는 사람, 씨앗이 되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 하늘과 닮은 사람... 그리고 완벽한 슬픔을 겪은 사람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을 과거에는 그리고 현재에도 마녀나 미친년으로 불렀을게다.
“완벽한 슬픔은 여기 없다 그걸 겪은 사람은 모두 죽었으니까”
- 김이듬, <그림자 없는 여자〉 부분
완벽한 슬픔을 겪은 여자들은 모두 죽었다. 어느 때에는 화형을, 어느 때에는 총살을, 어느 때에는 폭행을 당해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지 않을 정도의 슬픔뿐이다. 토로하는 슬픔조차 미완의 슬픔이라는 데 또다시 슬픔이 있다. (252면, 피흘리며 자매가 된 마녀들 – 성현아)
미친년으로 호명 당하지만 스스로는 기꺼이 천 개의 문이 활짝 다 열려있는 페미니스트로 마녀로 마침내 광녀로 패배와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살고 또 살아내며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꽉 차 있다.
부럽구 부럽구 또 부러울 뿐이여라.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나순결
미친 년, 썩을 년, 헤픈 년, 되바라진 년, 독헌 년, 예민헌 년. 이 말들은 남들헌티는 잘혀주구 아껴주구 미소루 답혀주는데 자기헌테만 태깔 부리면 바루 입밖으루 발화되는 못난이 비여성들으 사유와 그에 따르는 행동양식이다.
그럴 때 '미친 놈, 삽질허구 있네' 허며 가던 길, 마져 감으로써 해결되면 시상이 요지경이 아니 되었겄다. 즉시 재발이며 폭력-강도는 배가 될 것이다. 세를 불려서 맞대응혀야 된다. 막말에는 막말로, 주먹에는 연장으로.
또 하나 기막힌 무기가 있다. 글과 글의 끝없는 연결이다. 못난이들으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주의, 비장애주의, 이성애주의가 반동임을 반공동체주의임을 낱낱히 까발려 펼쳐놓아야 헌다. 스무명의 작가분덜! 어쩜 이리 맛깔나게 야그를 이어가는 거여유? 부럽구 부럽구 또 부러울 뿐이여라.

예민하거나 무디거나를 왜 니들이 판단하는데?
이재헌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사회가 여성들에게 씌워온 낙인과 그 양상을 소설과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마녀’, ‘광녀’, ‘예민하다’ 같은 말들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착취와 폭력이 드러나는 언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폭력과 낙인의 구조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집과 직장, 새댁을 비롯한 많은 사적 공적 영역에서는 우리 여성들을 향해 많은 비판을 쏟아낸다... 그중 하나는 여성이 너무 예민하다거나 무디다는 것이다. 이 모순 형용이 향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현실이란 물론 오래고 힘센 가부장제의 규범일 터이다. 그것이 남성 중심주의는 물론 지배적이고 탐욕적인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파시즘과의 투쟁’이라고 선언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민낯은 파시즘과 너무나 닮았다. 남과 여 혹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사람들을 가르고 권력으로 약자를 억압해야 하는 시스템. 우리는 이 것을 어떻게 전복하고 해체할 수 있을까. 깊은 골짜기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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