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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소모임 일정 안내/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미'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by 인권연대 숨 2026. 3. 23.

펠프미 서른 아홉 번 째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요하나 헤드바 著, 마티 刊, 2025

"지금 여기서 당장 장애가 있다, 지금 여기서 당장 대결이다."
나순결

 

작금은 꺄풰 'NOSUBA(노슈바)'. 무설탕 파이, 빵 파는 곳. 봉명성당 앞. 요작가 참 요망지다. 스스로 씹년,썅년,잡년,미친년,약헌년,아픈년 이란다. 킹크애호-구엽다-, 독자으 즉각 장애 접근을 촉구허구, 몸으 존재론은 몸으 의존성이라 잘라 말허구, '불구 디바 련대'를 맺자구 선동허구, 다이어트를 허건 오르가즘을 느끼건 니 맘대루 허라허구, 타란티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보라구 부추기구, 자서전쓰기루다가 시스젠더 가부장제에 똥침을 놓으라허구,

가위쳐줘, 대디놈아 를 연호허라허구, 좋은 모욕이 뭔지 고민케 허구, "¡Ahhh huevo! ¡Esoooooo! !Quiero ver sangre!" 를 또헌 연호허라허구, 우리 중 일부만 건강허면 아무도 건강허지 않은 것이라 허구, '불구 시간'을 대비허라허구, '비장애인'이라는 단어엔 '일시적'이란 형동사가 갚에서 견인혀야 문법이 맞느거다라구 강변허는데 맞다 싶구, 자신을 둠 메탈을 연주허는 호모 말자지 씹탑이라는데 선명히 뭔가가 떠오르는 건 없구,

잼난 사실. 요작가는 요 책에서 '장애중심주의'를 역설허면서 '장애중심주의'란 단어를 단 한번두 사용허지 않았다. 요작가 스타일루 상찬을 허자면,

넘멋지닷" 잡년아" 언능 일루와아앗 "가위쳐줄께엣"

미래가 어떤 것이든, 장애가 있을 것이다. 그때 장애가 '비장애중심주의'와 동의어인 '백인남성중심주의'와 또헌 동의어인 ''자본주의' 179도 반대편에서 큰 파고를 일으키구 단박에 덮쳐 먼바다 넘어 그 어떤 곳으루 몰아낼려면,

지금 여기서 당장 장애가 있다, 내헌티. 지금 여기서 당장 대결이다. 요작가 맹키루. 더럽게 걸걸헌 입담과 글루다가 완전무장헌 채. 시작두 없구 끝두 없다. 대결허는 너내우리가, 어깨 겯구 전진허는 너나우리가 있을 뿐.

지금 당장 여기서 '불구 시간'을 사는 너내우리가. 온시상 모든 불구프릭변태드랙끄리슈 빠예할 은 단결허자잇!

 

표지

아프고 힘들어 피하고 싶지만 계속 살아가기 위해 우리 함께 합시다!
이은규

 

책 표지부터 어지럽다. 작가 요하나 헤드바의 표현 방식대로라면 난잡스럽기 그지없다.

할 말이 참 많은가 보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벽돌 크기의 분량에 하고 싶었던 말과 하고 있는 생각들을 쏟아낸다.

나는 무엇이 생각 가능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생각의 변화, 즉 확장될 수 있는 그 기적적인 수용력을 좇는 것이다. 한 구절, 한 문장, 한 문단을 지면에 써낼 때, 평서문이 아닌 의문문으로 쓴다면, 저 단어가 아닌 다른 단어라면, 다른 문장구조, 다른 어휘, 다른 구두점이라면 생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것이 나를 전율시킨다.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알고 싶다. 그것이 무엇을 만들고, 파괴하고, 타개하고, 보호하고, 위반하는지, 어떻게 칼, 주먹, 키스, 우물, 지도,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 아마도 무언가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인 듯하다. 이것이 바로 내 몸이 느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라고 들었던 무언가는, 실은 수많은 것이었다. 불가지(不可知)를 향해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무언가, 깨부숴진 무언가, 그 부서짐 속에서, , 나는 무엇이 되었는가.” (43)

 

다 읽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안읽었다. 펠프미를 진행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

? 때문에?를 두고 생각을 해봤다. (알리바이를 만들어 봤음)

다르지만 익숙한 내용 때문에... 이미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많이 보았고 들었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픈데 또 맞고 자꾸 맞고 다시 맞고 그래서 이제는 맞고 싶지 않은 마음. 힘듬. 거기에서 오는 거부감이 생겨버렸다.

아픈 여자 이론은 우리를 아프게 만들고 계속 아프게 하는 것은 이 세상 자체라고 주장한다.” (80)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쉴 수가 없을만큼 계속 아프게 하는 세상 때문에 거부감이 생겨버린 걸까?

요하나 헤드바는 이에 대한 처방을 내려버린다.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저항은 다른 이를 돌보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동안 여성화되어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간호, 양육, 돌봄의 실천에 동참하는 것이 저항이다. 서로의 취약성과 연약함, 사회적 불안정성을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지원하고 존중하고 거기에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이 저항이다.

서로를 지키는 것, 지원 공동체를 만들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저항이다. 급진적인 친족 관계, 상호 의존적인 사회성, 돌봄의 정치가 저항이다.” (85)

 

내가 읽은 만큼만 보이는 요하나 헤드바의 자문 자답은 우리에게 던지는 처방전이기도 하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우리의 최후를 직시하면서도 계속 나아갈 방법을 찾는 그런 정치를 우리는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이는 감당해내기 힘든 과업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함께합시다"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32)

 

그런데 ... 지금 나에게는 당장

그의 처방전 말고도 따뜻한 커피와 아늑한 햇볕 아래서 다정한 수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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