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105호> 아가다와 니노_잔디(允 )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1. 27.

 

오랜만에 김진영님의 아침의 피아노를 꺼내어, 그가 돌아가기 전 이태 동안 짧고 깊게 써놓은 그의 마음과 눈 맞춘다.

 

조용한 날들을 지키기.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 김진영

 

그리고 나의 자그마한, 웃음 가득한 그를 떠올린다.

그와 나는 십이월의 토요일 어느 오후, 오징어잡이 배의 조명이 달린 따뜻하고 작은 커피 집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그 집 한 켠에 마련된, 두 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방을 차지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그 집은,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며칠 동안 휴무라고 입구에 작게 쓰여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사 가지고, 그 커피 집 마당의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그와 나란히 걸어 근처 편의점에서, 기다란 커피를 두 잔 사서 그가 먼저 와서 나를 잠시 기다렸던 그 자리로 돌아와 나란히 앉았다. 등으로는 겨울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두 손 안에는 종이 커피 잔의 온기를 감싸 쥐고

일 년에 두 세번 식구들이 잠든 사이 길게 나누던 전화데이트도 않고, 그의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로,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목소리도 못 듣고 시간이 지나간 걸 아쉬워하였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생각날 때마다, 그가 슬픔의 강을 온전히 건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내가 보내는 기운을 그가 받는 것을 상상하며...

엄마를 잃고, 그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일하러 나가 하루에 서너 시간씩 방문 돌봄 일을 하고, 귀가하여 겨우 식사를 만들어서 자신에게 먹이고, 오지 않는 잠을 자려 애쓰고 그다음 날도 그렇게 하며 지내왔다고 했다. 먹기 싫은 밥을 기운 내려 꾸역꾸역 먹는 사람처럼, 그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그와 동시에 그 기억으로 인해 슬픈 시간을 견디어온 듯 보였다.

어머니의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고 정리하여 상자에 넣지도 못하고 지내는 동안, 사람들이 건네는 말 중에서 가장 듣기 힘들었고 상처처럼 마음에 남은 말은, 예순 넘어 엄마를 잃고도 왜 그렇게 기운을 못 내냐는 말이라고 그는 말했다. 생각하면 어머니나 아버지 가까이 살면서, 이만큼만 사랑해주시지 너무 많은 사랑을 주시니까 참 힘들다 여겼는데, 삼년 사이로 두 분을 잃다보니 그 사랑을 온전히 기쁘게, 깊이 감사하며 누리지도 못하고, 고맙다고 자주 말씀 드리지 못한 것이 자꾸 아쉬워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슬프다고 말했다. 자신을 다정히 감싸고 있던 든든한 울타리가 갑작스레 사라져 여름을 겨울처럼 겨우, 지나온 사람처럼 여겨졌다.

어머니의 밥을 먹고 허기를 달랬던 공통점으로(그는 육십년 넘게, 나는 십년 남짓이지만), 어머니의 웃음을 마주 했던 우리이기에, 그 커피집 마당에서 겨울 햇살 따라 자리를 옮기며 대화를 나눈 두 시간 속에, 우린 서로의 기억 속에 자리한 어머니를 마음껏 그리워했다. 예순이 넘어 엄마를 잃어도, 보고 싶은 엄마를, 손잡고 싶고 만지고 싶은 엄마를 잃은 건 누구에게나 슬픈 거니까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하고 함께 엄마를 기억하고, 우리끼리 오늘부터 맘껏 엄마를 이야기하자고 했다. 울다가 웃다가, 조용하다가 박수치며 시끄럽게 말하다가 겨울 햇살이 온기를 잃었을 때쯤, 커피 집 문 닫힌 걸 모르고 왔던 손님들이 뜸해질 때쯤 우리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엄마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밤 아홉시나 열시쯤 일상의 고마움을 한 문장씩 나눈다. 우린 가끔 여전히 아프고, 어느 날엔 방바닥이 등을 잡아당기지만, 꾸역꾸역 일어나 사람을 보살피러 나간다. 물론 우리의 보살핌을 받으시는 분들에게서 커피 한 잔, 금방 뎁힌 떡 한 조각,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보고 있는냥 힘든 오후를 건네주시는 공감 한 마디를 마음 가득받기도 한다.

가끔 '오늘의 고마움' 대신 그는,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이 귀찮고 자신을 돌보는 것도 손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적기도 하지만, 따뜻하게 한잠 자고 일어나, 다시 미소 지으며 일어선다. 그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스승의 모습이 웃는 스승이라서 나는 그가 참, 좋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죄의식을 심어주기보다 언제나 양팔 벌려 품에 안아주려 기다리는 이미지를 전하는 그가, 아름답다.

며칠 전의 그의 고마움 문장 하나.

너무 쉽게 잠드는 게 할 일을 놓치게도 하지만, 불면증이 아니어서 고맙다. 어젠 다락골에 일하러 갔더니, 집안 온도가 1도 냉골이다. 수도도 얼고, 거실에 커피잔도 얼었다. 아마도 우리 어르신 난방비 걱정에 만지신 게 아닐까...보일러도 얼어서 어찌 해야 할지...오늘 같은 날, 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일찍 나오길 정말 잘 했다. 나를 바라보는 어르신의 눈빛이 안쓰럽고, 한편으로 고맙다. 정말 추운 하루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