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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할머니 마음

by 인권연대 숨 2025. 8. 25.
할머니 마음
잔디

 

매미는 헌신적으로 까만 밤을 환한 울음소리로 채운다. 환한 밤 덕분에 갱년기 증상을 겪는 밤, 슬며시 앉아 매미소리에 기대어 본다. 염색하지 않은 머리카락, 때론 푸석푸석한 피부 그 또한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겹지만 내가 어디에 기대어 서 있는지, 어디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는지 들여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앞다투어 경쟁하기라도 하듯 숨 가쁨으로 따낸 금메달 같은 주름을 나는, 숨기고 싶지 않다. 금메달은 다들 자랑하고, 부러워하니깐. 나의 주름은 수없이 웃은 나의 웃음과 미소의 흔적이니깐. 내가 맘껏 사랑스럽게 여겨주어야지 싶다.

 

이제 아가야들(갓 태어난 아가야부터 일곱 살 즈음 아가야들)을 만나면 이모나 고모라고 호칭하기보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어떨까라는 말이 주저 없이 툭 튀어나오곤 한다. 나의 자녀들에게선 아직 손자도 손녀도 탄생하지 않았지만, 옆을 돌아보면 나의 친구들이 손자를 혹은 손녀를 안고 있기도 하니깐. 그리고 지금의 나의 마인드는 거의 할머니 마인드 아닌가? 나의 겉은 어떨지, 상대들이 보는 나는 어떨지 잘 모르지만, 내가 바라보는 나는 예전보다 사람을 더 따뜻하고 여유롭게 바라보려는 시선을 점점 더 장착해 가고 있는 듯하다. 짜증이나 분노의 감정을 맞닥뜨렸을 때, 얼어붙거나 회피하는 반응에서도 조금 떨어져 유머가 생각나기도 하고, 다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 횟수도 늘었고, 회사에서 회의할 때에도 사소한 것은 사소한 대로 두고 본질적인 것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나를 자주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잔소리 같은 말을 하고 '노파심에서 발생한 다정한 도움의 말'로 여겨줄 수 있나요? 라고 묻기도 하고, 과흥분과 무기력의 끝과 끝을 오가느라 힘듦을 선택하기보다는 두 상태의 그 중간 즈음이 있다면 그 근처를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볼 때, 내가 할머니라는 단어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소리에 민감하면서도 매미가 한껏 소리내어주며 환하게 밝히는 밤의 고요 속에서 스스르 잠들 때도 있으니까. 드르렁 코를 골면서.

 

나의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를 느낌으로는 가시라는 걸 느끼지만, 돋보기 없이 그 가시를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가지는 형체를 감추어 버린다. 뜻하지 않게 하게 되는 숨바꼭질은 가끔 무력감을 동반하여 나의 마음을 거실 바닥의 타일에 눕혀 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땐 물을 끓여 머그잔에 붓고 알칼리 소금을 티스푼으로 반 스푼 넣어 휘휘 저어 마시고 몸을 깨운다. 심기일전하여 일어나 바로 눈앞에 있는 방이지만, 사십 리 바깥에 있는 것처럼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 같은 방으로 들어가 휘적휘적 가방에서 돋보기를 찾아 쓰고, 떡 하니 내 검지에 서 있는 가시를 찾아 시술을 한다. 가시와의 숨바꼭질 시간, 삼십 분(가시를 빼야지 생각하기 + 몸을 일으켜 돋보기 가지러 가기+가시를 뺄 침을 찾기+가시를 빼기 = 30).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있다가 아이고 허리야 하며 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 3. 가족과 먹을 음식을 분주하게 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돌아보면, 아이고 카레 한 가지 완성하는데 한 시간이나 쓰다니 하는 허탈함이 일상 곳곳에 숨어있다 불쑥 튀어 나온다. 이 허탈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행동을 할까 선택하는 과정을 인식하는 것이 할머니 마인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할머니라는 말은 단어 속에 크다, 을 품은 이라는 순우리말을 담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할머니라 함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어낸 경험들로 마음의 관용과 수용의 창을 한껏 크고 넓게 확장 구조 변경을 해 온 사람이 아닐까. 삶이 어쩔 수 없이 준 모진 경험, 기쁜 경험을 겪으면서 발견한 창을 통해, 내가 어떤 시선으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지, 창문 안쪽에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지도 바라보면서, 그 탁월한 시선으로 할머니가 만나는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가 원한다면 등도 좀 쓸어주고, 꼭 언어가 아니더라도 상대 옆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낌적인 느낌을 할머니의 몸에서 뿜어내어 그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할머니가 아닐까. 내 안의 어떤 마음이 아직 할머니로 완성되지 않았다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상상속의 할머니의 이미지라고 해도 나는 이런 할머니가 조금은, 되어 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뒷집할머니께 잠시 갔었다. 잘 작동되던 밥솥이 작동 안된다고 전화가 와서. 설은 밥에 물을 한 잔 부어 다시 취사를 누르니 되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밥 냄새가 가득한 할머니의 주방. 싱크대 바로 앞의 의자. 할머니가 설거지할 때 앉는 의자이다. 어딘가에 지지하지 않으면 거북이 자세가 되는 할머니의 자세. 별 것 아닌 걸로 사람을 불렀다고 말씀하시며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나에게 먹어보라 권하신다. 요구르트 뚜껑을 따서 할머니랑 한 병씩 같이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먹던 밥을 마저 먹는다. 할머니의 밥을 생각하면서. 요구르트를 건네는 손을 생각하면서. 할머니는 내일 아침이면 일어나 한 손으로는 뭔가를 붙들고도 한 손으로는 비질을 해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기 전에 마루를 쓸고, 선생님을 맞이하실 거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창을 열고 바람이 왔다가는 걸 보실 거다. 또 기운이 더 나면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실 거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등을 보는 게 좋다. 그리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이런 문장을 써 본다. 할머니의 등은 야위었지만, 마음은 야윈 틈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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