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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팀웤

by 인권연대 숨 2025. 10. 27.
팀웤
잔디

 

언제 헤어졌지? 헤어지기는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6, 7년 만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은 나의 오랜 그와 걸었다. 커피 한 잔씩 손에 들고. 우리가 걸은 길은 우리가 아직, 같은 회사에 다닐 때에는 함께 걸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길. 그땐 점심 먹고 잠시 걷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시절. 잠시의 짬이라도 나면 한 가지의 일을 더 하려고 머리를, 마음을 맞대던 우리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걸 함께 기억하며 일하는 비슷한 마음이어서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척하면 척! 이던 우리였다. 어느 날, 그는 생활체육인으로, 혹은 다른 회사에서의 서비스 제공을 선택하며 지금의 회사에 등 돌리며 떠났다. 여름이었다. 그의 업무 수첩은 내 교실 책꽂이에 그날부터 지금까지 꽂혀 있다. 교실을 들락날락하며 나는 그의 업무수첩 등을 보며 기운을 내기도 하고, 동료애를 그리워하기도 하며 지내었다. 이용인분들 중에 가끔 그의 이름을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분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수필 읽듯 듣기도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휴가를 내어 나를 만나러 오다니......

 

다른 자리에서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자유로움과 팀웤을 말하였다. 비정규직인 나의 위치와 맞닿아 있는 단어. 자유로움. 어쩌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기도 한 것처럼 보이는 자유로움과 불안. 그 자유로움과 불안을 꽉 잡아주는 팀웤. 그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팀웤이란 단어를 들으며 나는 우리 팀 팀원들과의 관계성도 떠올렸다. 교실에서의 나의 활동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우리 팀원들의 보이지 않는 업무 처리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기보다는 간단한 톡으로라도 표현해 보아야지 하는 생각도 함께.

그리고 말하기도 한 것 같다. 벚나무 길을 걸으며 벚꽃이 한창일 때 누구와 걸었었는지, 벚나무 단풍이 그 노란빛이 낮에 뜬 별님 같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함께 있었던 과거, 그 과거의 시간들이 키워낸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막 하면서 웃으면서 한참을 걸었다. 우리의 대화가 우리에 관한 이야기여서 참 좋다고 말하면서.

어떤 길을 걷든 나를 한 번도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걷는 내가 있다. 출근길에 무척 아름다운 안개가 산 위로 피어오르는 걸 , 아름답다말하며 함께 보는 내 안의 나. 주차하고 회사로 들어오는 짧은 길에 피어있는 꽃을 쭈그리고 앉아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찍어도 출근이나 해라고 재촉하는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내 안의 나.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이렇게 서사가 긴가라는 생각을 하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는 나에게 피곤한 데 사람에게 집중하려 하는구나, 라고 공감하는 내 안의 나. ‘내일 6, 7년 만에 동료를 만날 생각하니까 잠이 오지 않아? 설레어?’라고 물어 보아주는 내 안의 나. ‘네 안의 불안이, 두려움이 조금씩 빛바래어 가는 그 과정을 내가 너그러이 보아줄게라고 말하는 내 안의 나. 나의 반짝임을 허용하는 나를 만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을 소요하였지만, 마침내 만나고야 만 이런 나에게서 나는 등 돌리지 않을 것이다.

나와의 팀웤을 어떻게 잘 꾸려 갈 것인지 삶에서 그 어떤 부분보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 마음을 연마하고 싶다. 그 연마한 마음에서 얻어진 어떤 것을 내가 만나는 이웃과 공유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내 안의 내가 그리워하고, 만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행복일까?

 

우리는 만나서 얼싸안고 커피를 사고 벚나무 길을 걷고 다시 만난 지점으로 돌아와 얼싸안고 헤어졌다. 어차피 아침마다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라는 명상글을 함께 읽는 사이, 가끔 일상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을 공유하는 사이라서 아침마다 만나지만,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며 가끔 몸을 부딪히면서 걸은 것은 처음이기도 한 것 같아서 그날의 웃음 소리와 악수와 포옹과 그날의 바람과 한적함과 여유와 자유로움과 아름다운 하늘은 당분간 내 몸 안에서 다정한 파도처럼 왔다 갔다 그렇게 나를 받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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