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개서
잔디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그 시작하는 마음에 처음은 무엇이 있었을까? 여러 생각들이 나를 찾아오지만, 지금의 나는 또 그 시작이 중요하기보다는 서른 해라는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온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나는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라는 시작이자 끝인 질문에 서서 그저 ‘지금’이라고 고요한 목소리로 말하는 나를 본다. 삶에서 무얼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배운 것을 혼자만의 방에 쌓기도 하지만 누군가 모르는 눈빛을 하면 그 눈빛에서 돌아서기보다 아는 만큼 설명하며 또 공유하는 걸 즐겨서 기억나지 않는 그 시작의 마음이 그것이었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중학교 입학하고서야 만난 나는 영어가 참 좋았고 새로움을 즐겼다. 또 영어선생님이란 단어가 또 매우 매력적이어서,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날마다 영어 단어를 외고 또 외고, 학급마다 있는 영어부장을 하고 싶다고 손들고(어디서 그런 용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흑백 TV에서 그들을 보게 된 날, 나는 알아버렸다. 그 누구도 등 떠밀지 않고,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는 것을. 지금의 노트북 크기보다 좀 더 큰 크기의 흑백 TV 화면에서 걸을 수는 있지만 앞을 볼 수는 없고(신체적으로), 앞을 볼 수는 있지만 스스로 걷지는 못하는 학생들 둘이 짝꿍이 되어 서로 도와가며 한라산을 등반하고서 쓴 글을 국어선생님이 읽으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의 눈물을 보며, 영어라는 수단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깊고 큰 것이 그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 어떤 일도 사람과 관련되지 않은 일은 없지만, 마음 안에 있는 말들이 밖으로 언어화된 말과 간극이 큰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고, 그 마음을 읽고 감동과 뭉클함으로 엉엉 우는 다 큰 남자의 눈물의 원류가, 그 세계가 몹시 궁금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다. 나의 지금의 직업이 된 일을 생각할 때 첫 번째로 다가오는 기억 중 한 가지이다.
또 한 가지는 고등학교 때이었던가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 어떤 여배우가 복지관이라 쓰여진 건물 앞에 서서 아이와 보호자를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장면. 그 장면을 통해서 복지관이라는 단어를 내 생애 처음 보았던 – 어떤 곳에서 살았던 거야?- 기억. 나를 만나러 아이들이 왔다가 보호자님과 돌아갈 때 대부분 복도에서 헤어지지만, 어떤 날엔 복지관 주차장에까지 손잡고 가서 차를 태우고 손을 흔드는 날이 있는데... 기억속의 이 장면과 손을 흔들고 있는 내가 겹쳐지면서 내가 서 있고 싶었던 그곳에 서있네 라는 생각과 오랫동안 그 모습으로 살아온 나를 생각하며 혼자 미소 짓는 나를 본다.
지금의 일을 하는 삼십 년 동안 나에게 다가왔다가 스쳐 지나간 사람들, 또 내가 스쳐 지나온 사람들, 그 시간을 여전히 함께 관통해 인연으로 이어져 온 사람들, 연락하거나 목소리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 문득 나의 이십 대에 서툴고 또 서툰 몸짓과 마음짓으로라도 보살폈던 그 아이들이 이젠 성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텐데 아이라고 부를 수 없는 - 내 머릿속에선 여전히 아이의 모습인 -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손잡고 함께 울고 웃던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생각할 때가 있다. 아주 초짜인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고, 미숙한 나의 상담을 귀담아 들어주시며 소개하는 내용을 아이와 시도해 보시고 나에게 다시 피드백을 주시며,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나를 키워주셨던 그분들. 때론 교구를 담은 보따리와 보따리 둘러메고 버스 타고 다니며 가정방문하며 수업하러 다닐 때, 고생 많이 한다며 내어주시던 악수와 토닥임, 보리차 한 잔. 때론 희귀병으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잃고도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는 나를 더 걱정했던 그분들. 그 악수에 담긴 마음들이 지금의 나를 서있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분들의 악수가, 토닥임이, 격려가 아니었더라도 지금의 일을 계속할 용기가 나에게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을까...
삼십 년 동안의 인연들에 감사하면서, 뚜벅뚜벅, 꾸역꾸역 이 길을 걸어온 나를 돌아본다. 고맙고 감사한 날들이 더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오해와 무거운 질타의 말을 듣는 속에서도 진실과 진정성을 방패로 들고 있으려고 무진 애썼던 그래서 나를 보호하고, 내 앞의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나의 마음과 말들에도 감사한다. 어떤 말들이 우리의 성장과 사랑에 더 도움이 될지 공부하고, 그 공부를 바탕으로 때론 구멍이 큰 채를 때론 구멍이 잘디 잔 채를 상황따라 골라 들며, 대화 속에서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며, 서로의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을, 지금을, 고요를, 흘러감을 보고 싶어하고, 보려고 노력하는 나를 내가 본다.
이제 막 말을 배워 말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란 단어는 어렵고 또 어려워서 이,모,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모델링도 그렇게 했었는데 이젠 이모라고 말하기엔 억지스러워서 ^^ 지금은 할, 머, 니...라고 불러줄 수 있을까? 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요즘의 나를 축하하고 또 축하한다. 귀엽고 다정한 할머니. 앞으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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