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잔디
어제도 했던 설거지를 오늘도 또 하고, 작년에 설거지를 올해도 계속한다. 살아있는 한 나를 위한 설거지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 감사 일기를 ‘감사의 정원’에 적다가 “오늘 나의 환경을 위해 실천한 작은 행동 한 가지를 칭찬해 보세요.”라고 팁이 뜨기에,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밤이 지기 전에 해결한 것 참 잘 했어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설거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걷기는 못해도 매일 빠지지 않는 일과처럼 해야만 하는 숙명의 매일 반복되는 설거지이지만, 설거지에 대한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걸 문득 알게 되었다. 퇴근해서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하나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잠시 쉬었다 설거지를 하고 공부하러 책상 앞에 앉는다. 별다른 변화 없이 거의 매일 반복되는 저녁의 모습이라고 할 때, 이제 막내까지도 나의 손과 비슷한 크기의 손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기에 혹여라도 내가 지쳐 보이면, 오늘 설거지를 하겠다고 저희들끼리 옥신각신하다가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고, 하겠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싶기도 하게 말이다. 기숙사에 머물던 딸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설거지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설거지에 대한 기본적인 세팅은 제일 믿는 구석이 나, 라는 것이 우습게도 그냥 수긍이 된다. 저녁 식사를 만드는 것이 즐거움이었듯 설거지도 그 선상에서 이어지는 즐거움이니깐. 옥신각신하다가 막내가 설거지를 할 때 조금 도우려고 할라치면 오늘은 내가 당번이니까 편안하게 앉아서 쉬라고 하거나 할 거 하라고 하는데 막내의 뒷모습을 보며 앉아서 그 애의 설거지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아직 설거지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둘러보며 설거지 꺼리를 찾는 것은 어려운지 개수대 안과 개수대 주변에 있는 설거지 꺼리 까지는 처리한다. 딱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 만이어도 만족한다. 꼬물꼬물하던 갓난아기가 어느새 자라 나보다 키가 큰 중학생으로 자라, 또 설거지를 하는 뒷모습이라니. 건조대에 그릇을 쭉 세워 가로 정렬 상태로 나란히 줄이 지어 서 있게 만들고, 설거지를 다했다고 생각한 순간 - 옆에 설거지 꺼리가 더 남아있을 지언정 - 개수대 주변과 개수대 안쪽의 물기를 대나무 행주로 싹 닦고 비틀어 물기를 쫙 짜서는 건조대 한켠에 널어놓는 모습이 나와 닮아있어서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그 애가 룰루랄라 샤워하러 간 사이, 그 애가 아직 모르는 설거지를 슬쩍하고, 물기를 싹 닫아놓은 것은 비밀이다.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그 애의 완벽한 설거지를 하는 날이 그 애 앞에 당도하기를.
어쩌다 설거지가 귀찮은 날, 조금만 더 앉아있자 조금만 더... 하다가 아홉 시, 열 시 가까이에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예전에도 그런 날들이 있었는데 그 때의 나는 공동체를 위한 일을 처리하면서도, 밤에 설거지를 하는 것은 혹여 라도 자고 있는 식구가 있다면 숙면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숙제나 공부를 혹은 개인 여가 활동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대단한 염려를 하면서 살금살금 설거지를 진행했었다. 지금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에 설거지를 하더라도 그냥 당당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한다는 걸 오늘 밤,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밤이 지기 전에 해결한 것 참 잘 했어요.”라고 적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당당하게 한다고 해서 그릇과 그릇이 부딪혀서 나는 소리를 일부러 크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음이 나기는 하지만, 너무 소심한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할 일을 하는 사람의 편안하고 담담한 마음의 설거지. 밤에 자면서 아직 하지 않은 혹은 못한 개수대 속의 설거지 생각에 잠을 자면서도 노심초사하던 밤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설거지는 “다음 끼니를 먹을 때까지만 되어있으면 되는 거야”라고 나 자신에 말해주며 “편안히 자”라고 한다. 하루종일 일하고 이제 잠자리에 든 나를 내가 괴롭히지 않는다. 하루종일 애쓴 내 속을 내가 긁어서 상채기를 내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마셔야지 하며 만들어 놓은 따뜻한 차가 담긴 텀블러가 씽크대 위에 올려진 장면을 회사에 도착할 즈음 번뜩 생각이 나더라도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냐고 큰 소리로 면박을 주지 않는다.
돌아보면 탓하고 당황하고 절망하고 창피해하고, 안절부절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내 마음을 꽉 채우기도 했었다. 지금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전의 큰 파도가 나를 흔들었다면 지금은 그 너울의 크기가 좀 작아져서,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나를 잔잔하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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