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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아들의 말

by 인권연대 숨 2025. 11. 26.
아들의 말
잔디

 

집에서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동안 달려간 곳에 아들을 두고 돌아왔다. 스물 한 살의 아들과 이렇게 먼 시간 동안의 분리를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그리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들이 겪는 것은 처음이라서, 아니 그 어떤 이유보다 스무 해 넘게 수학여행이나 가까운 지인 댁 방문을 제외하고는 매일 보던 아들을 긴 시간 만나지 못하는 경험은 처음이라서였을까? 헤어진 지 닷새 만에 주말 토요일과 일요일 한 시간 주어지는 휴대전화 사용 시간에 아들과 통화하기 전까지는, 매 시간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 시간일까? 잠은 잘 자고 있나? 여유롭게 씻는 스타일의 아들이 씻는 시간이 아주 짧다던 데 잘 씻고 있을까? 24시간 동안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데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다가올 때마다 불안하거나 슬프거나 하는 마음을 어루만지며 닷새를 보냈다.

 

토요일 아침부터 언제 전화가 오려나 기다리다 오후 130분에, 닷새 만에 듣는 아들의 목소리는 조금 허스키해져 있었고, 안녕하십니까? 라고 나에게 인사하였다. 14명이 함께 생활하는 생활관에서 모두 함께 통화중이라 배경으로 들리는 소리와 아들의 목소리가 거의 같은 크기로 들려와서 아주 집중해서 들어야만 했지만 전화통화가 아주 큰 혜택으로 다가왔다. 큰 소리로 대답하느라 목소리가 조금 쉰 소리가 난다고 말하였고, 새벽 3, 4시쯤 깼다가 다시 잠들지만 잠은 잘 잔다고 말하였고, 일상이 궁금하다고 하니 시간대별로 무엇을 하는지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토요일 아침은 평일의 아침보다 늦게 기상하고 브런치가 나온다고도 들려주었다. 첫날엔 불안하고 낯설어서 잠을 잘 잘 수 없었지만 둘째 날 오후, 교육을 하는 소대장님의 한 문장이 아들의 마음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고. 그 문장은 너희들은 이제 못돌아간다. 현실을 직시해라. 이제 꿈에서 깰 때가 됐다. ” ~! 엄청 큰 자극인데, 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은 그 문장이 어쩔 수 없음이긴 하지만, 하루아침에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분위기속에서 괴리감이 컸는데, 아 그렇구나! 나 못돌아가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안함보다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소대장님과 개별상담하면서 자신감있게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여쭈어보니, 우선 목소리를 크게 내보는 것이 비결이지 않을까? 라는 조언을 듣고 목소리를 크게 내보려고 시도해 보고 있다는 아들의 말.

국군도수체조, 막사, 쉬어~! 복무 신조, 전투복, 연병장, 점호, 부대 인원 보고, 함성, 베레모 각 잡기, 군화, 분대장, 제식 훈련, 순차적, 대기 시간, 생활관, 동기들,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는 대한민국의 군인”, “신의를 지키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아들과의 통화에서 내가 듣는 단어들이다. 군인의 용어를 보호받는 민간인의 언어로 바꾸어 이해하는 부분들에서 서로 흐름과 리듬을 찾아가는 전화통화 과정이다. 3주 동안 6번 통화하였고, 여섯 시간 정도의 통화시간이다. 함께 있을 때는 간단한 톡으로 마음을 나누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음성에, 의미에 집중하는 시간이랄까?

어할즐하(어차피 할거면 즐기면서 하자~!)라는 단어를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사용해 보았다. 어는 순간에 이 단어를 말해야 서로의 마음에서 빠직소리 없이 그대로의 의도가 전달될까를 생각하다 일상에서 이런 단어를 만났고 전달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일까를 생각해 왔다는 걸 다 말하니, 아들이 그렇다고 응수한다.

 

3주 동안 두 번의 택배를 보냈다. 그 속에는 며칠동안 쓴 편지와 비타민, 어디든 펼치면 읽어도 좋을 책, 짬짬이 개인시간에 다이어리에 기록할 때 쓸 펜 하나, 찬물에 녹는 스틱 커피 두 개(들킬까봐 뾱뾱이에 돌돌 말은, 그러나 들켜서 -택배를 아들보다 소대장님이 먼저 풀어본다는 걸 나는 몰랐다.-결국 마시지 못한),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읽어도 좋은 긍정확언 문구를 적은 단어카드장... 일상에서 만나지 못하지만 일상에서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적는 문장들로 여전히 함께 있다는 걸 나는 느끼고, 그걸 읽을 때 아들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

나의 친구이자 아들의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나의 친구의 아들도 군복무 중이다-의 톡. 아들들이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지내보자는. 그래, 아들이 지켜주는 이 땅위에 내가 서 있구나. 지금은 비록 이병도 아닌 훈련병이지만(아들의 말), 감안해야 되는 부분을 감내하면서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걸 새롭게 배우며 배움을 조금이라도 더 일으키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물어보는(이것도 아들의 말) 그 마음으로 지내는 아들을 응원하며, 나도 일상에서 이런 것을 추구해 보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보자고 마음먹는다. 아들과 통화하며 동네를 걸으며 찍는 사진을, 혹은 나의 일상에서 건져낸 아름다운 풍경을 아들과 통화하고 나서 가끔 톡으로 보내 놓는다. 어딘가에서 물결은 계속 치듯이 그렇게 물결치는 마음을 꺼내놓는다. 아들의 말들이 일주일 내내 내 마음속에 물결을 만든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사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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