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잔디
# 1
산 능선에 가지런히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해가 차오르고 산 능선의 나뭇가지 수형은 더 선명해진다. 산 능선에서 하늘을 떠받들 듯 나란히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노을이 질 때 나무를 바라보며 퇴근해 집에 와서 마당에 차를 세운다. 어둑어둑해져서 그때쯤 나무는 또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나무가 거기 서 있다는 걸 안다. 지나가는 구름도 보고, 구름이 변하는 걸 보고, 구름이 흩어지는 걸 보면서 나무는 거기에 서 있다. 아침이면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태양이 노을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펼칠 때도 그 풍경 속에 서 있으며 짙은 어둠속에서 조차 그저 서 있는 능선의 나무. 때론 마음 담아 바라보게 되는 나무, 때론 출근하면서 바쁜 마음에 지나치게 되는 나무, 때론 갓길에 정차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휴대전화 카메라로 담아내고야 말게 되는 풍경 속의 나무가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다시 바라보게 되는 나무 사진. 어느 날, 누군가에게 휴대전화 갤러리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보여주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전화 속의 사진 파일을 함께 보다가 둘이 마주 보고 웃고야 말았다. 전화기 속의 사진 대부분은 노을, 일출, 나무, 꽃, 구름, 하늘. 사람은 없냐고 동시에 말하며 막 웃었던 순간. 너무 웃다가 눈물이 난 그때였다. 사람도 간혹 있다면서 내가 변명할 때 그 말이 또 웃겨서 막 더 웃었던 명랑한 순간. 매일 떠오르지만 같은 풍경은 아니어서, 매일 지는 노을처럼 생각하지만 노을은 또 날마다 달라서, 그런 이유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아 자꾸 찍게 되는 노을 사진처럼, 나무 사진도 그러하다. 어떤 하늘빛을 배경으로 두느냐에 따라 나무의 아름다움도 제각각이다. 비슷비슷한 나무라도, 어제와 같은 빛에 하늘이라도 어제는 나무가 배경이 되고, 엊그제는 하늘이 전경이 되기도 하는.
# 2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아이가 보여주는 놀라운 장면, 아이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 아이가 한껏 몰입하여 엄청 어여쁜 장면(그래서 혼자 보기 정말 너무 아까운 장면), 아이가 찍어서 엄마에게 아빠에게 보여드리라고 요구하는 장면 등을 찍는다. 보호자께만 공유되고 그러고 나서는 나 혼자만 들여다보며 슬쩍 미소 짓거나 다음 수업 때에는 어떻게 재미있게 놀까 궁리하게 되는 사진. 어느 날엔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교실로 들어올 때 신기하고 신비로와서 자꾸 찍게 되는 햇살 사진. 창가로부터 빛이 더 길어져 아이와 내가 있는 곳까지 도착할 때쯤 아이는 검지를 펴서 빛이 여기에서 저기까지 걸어왔다고 말하며 벽에 드리워진 그 햇살을 따라 선을 긋는다. 아이의 작지만 분명한, 햇빛 받아 반짝이는 손가락 하나가 펴진 주먹 쥔 손.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또 찍게 되는 사진. 하루를 돌아보며 다이어리를 적을 때 물끄러미 바라볼 때, 아침의 따사로움이 나의 몸에서 다시 느껴지는 그런 사진.

# 3
돌아보면 잊혀진 순간. 기억나지 않는 순간. 가물가물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 그 순간이 사진 속에 있다. 한 달에 한 번 휴대전화 갤러리 속에 있는 일출 사진, 구름 사진, 노을 사진, 나무 사진, 꽃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 찍을 때는 경이로와서 찍었던 순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비슷해보이기도 해서 원픽을 뽑고 하루에 한 장만 남기거나, 일주일에 한 장만 남기거나 정리를 한다. 휴지통에 넣었다가 복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봐 당장 휴지통을 비운다. 그렇게 지우고 비워내는 작업을 반복하고도 갤러리에 가득 차 있는 사진을 어찌 할 줄 모르는 나를 볼 때, 욕심이 참 많다거나 잘 끊어낼 줄 모른다거나 노을 사진 그게 뭐라고 자꾸 찍냐고 나를 지적할 때가 있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말이다.
지금 안에서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괜찮아, 고요함을 즐기는 네가 좋아. 자연을 말없이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너의 모습 참 좋아. 숨을 참으며 숨을 내쉬며 노을 바라보는 한 때를 즐기는 네가 좋아. 점점 채워지는 갤러리 공간을 언제라도 네가 비우고 싶을 때 비워. 간직해도 괜찮아. 비워도 괜찮아. 지나갔지만 그 사진을 바라보며 에너지를 얻는 너를 바라볼 때 나도 함께 에너지를 충전하게 돼.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일 또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을 때 또 사진 찍어서 간직해줘. 차오르는 에너지를 함께 느끼자.
나에게 한껏 다정한 목소리. 자주 듣고 싶은 목소리. 자주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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