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잔디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엄지와 검지를 펴서 길이를 잴 만큼 키가 큰 수선화가 노오란 꽃을 일곱 개 피우고 있다. 태숙이 언니네 방울토마토 하우스 앞에 형님이 심어놓은 수선화, 그 옆에서는 수선화보다 더 작은 체구의 팬지가 딱 한 송이 여리게 피어나고 있다. 수선화처럼 팬지처럼 봄을 기다리듯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겨울햇살이 비추다가 어느 날 봄 햇살이 따스히 다가오는 날을 봄동이 기다리듯 첫 문장을 기다린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아침의 첫 커피를 기다리듯 그렇게 기다린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글이 멈추었는데, 십 년 넘게 보아온 아이의 부고를 듣는다. 하루종일 미루어왔다가 퇴근할 즈음 부러 자세히 그리고 사실을 말해 줄 사람을 찾아가서 듣는다. 출근하자마자 그 아이의 이름을 말하면서, 소식을 들었냐고 누군가 묻는 순간 나는 이미 알아버린 듯하지만, 무언가 듣는 순간부터 나를 만나러 오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중에 들을게요라고 말하며 발달지원실로 걸어가며 슬프게 눈물 흘리는 마음을 유보한다. 하루종일 벌써 슬픈 마음이지만...... 퇴근하면서 자세히 듣고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때는 그 아이가 아홉 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홍색 인형을 오른팔로 안고 분홍 가방을 메고 아주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었고, 처음 보는 나에게 웃어주어서 첫 출근에 긴장하고 있었던 내게 첫 웃음을 지어준 아이라고. 아이의 책가방 속에서는 슈퍼 전단지에서 오린 과자 사진, 어제 학교에서 접은 종이꽃, 현장학습 가서 받은 놀이공원 티켓,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맨투맨 티, 촉감이 부드러운 수건 하나 등등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아이에게는 무척 소중한 어떤 것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는 만나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대화도 나누고, 그런 시간들을 3, 4년 정도 보내고 보호자의 서비스 중단 요청으로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활동지원 선생님과 함께 보치아, 라인댄스 등 성인장애인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로비에서 조우하였을 때, 아이는 나의 손을 잡고 한참을 이리저리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제 막 생각난 듯, “나는 ☆☆, 선생님 안녕!”이라고 인사해 주어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이 가진 특성으로 인해 한동안 만나지 못하면 나는 잊혀진 사람이 되기 일쑤인데, 그래서 조금 외롭기도 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나를 기억해 주고 기억한 걸 표현해 주는 한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무척 영광이고 경이로움이기에... 그래서, 이 시간들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던 나는 그 아이의 부재를 아직 감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수요일 오후, 금요일 오전 복도 저 끝에서 달려와 “나는 ☆☆, 선생님 안녕.”하는 그 분위기와 아이의 이름과 억양, 반짝이는 눈동자,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어떤 틈. 그런 걸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다음 주에 또 만나, 라고 인사한 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나는 더 공들여서 인사를 나누었을까? 하는 생각을 반복해서 한 적도 있지만, 나는 우리의 마지막을 알 수 있는 예지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렇게 소식이 들려올 때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인생이 무엇일까? 허공에 질문하기도 하고, 슬픈 마음에 운전하다 엉엉 울기도 하고, 아이들이 생각나는 어떤 풍경속으로 들어가면 가만히 앉아 아려오는 가슴을 느끼며 조용히 정말 조용히 어쩔 수 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기까지 아직 한참을 소요하는데, 그 소요의 시간을 이번에는 어떻게 보내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아이가 왔다 갔다 하던 복도와 활동실에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릴 때, 함께 손잡고 서 있던 로비의 어느 지점에 이제 나 혼자 서 있으며 아이를 추억할 때, 아이를 기억하며 지금 만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생각할 때, 오늘의 노을이 지는 걸 보며 문득 그 아이를 생각하며 하늘에 말을 걸 때, 내가 자유롭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아이의 몸 안에서 그 아이가 진정 자유롭지 못했을까 에서 시작된 의문이 지금 내 앞의 상대들의 자유로움과 존재감을 함께 어떻게 풀어갈까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때, 한 치의 의심이나 불편함 없이 만개한 벚꽃처럼 활짝 웃으며 그 미소를 한참 나에게 보여주던 그 자유로움과 환함을 기억할 때,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아이를 적절히 돕기 위해 규정지었던 어떤 단어를 벗고, 이제 제한된 것처럼 보이던 몸도 벗고 자유로이 그 아이가 평온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릴 때, 아이를 기억하고 싶어서 아이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할 때,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찾아올 나의 첫 문장으로 내내 내 마음에 머무르고 있기를, 그렇게 슬픈 눈물로 바라게 되는 봄날의 아침이다.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여전히. 14년 전의 봄처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