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달리기

by 인권연대 숨 2026. 4. 27.
달리기
잔디

 

달리기 앱을 다운로드받고 트레이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다가 빨리 걷기를 안내에 따라 4주를 완성한 후 달리기 순서가 되었을 때가 아득하다. 기억이 아득하여 찾아보니 지난해 9월의 일이다. 갱년기에, 그리고 수면에 대해 무가치하다고 여겨온 나의 오랜 습관에 의해, 늘어나고 늘어난 체중과 넓어진 어깨, 등등의 이유로 기대를 가지고 다운로드 받았던 그 앱이 아주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며칠 전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두가 쏟아져 나오는 계절이니깐 움직일 이유는 이미 연두처럼 충분하다.

 

거의 매일 군에 간 아들과 전화데이트를 한다. 매일의 소재가 충분하고 어떤 날은 대화보다 침묵이 많아도 괜찮은 그런 통화의 이어짐이다. 우린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함께 있는 듯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몸이 피곤해서 운동으로 피로감을 풀었어요.” 그날 아들에게는 그랬구나라고 공감하고 별말하지 않았지만, 그 문장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산책을 즐기는 듯했다.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몸 움직임의 양을 겨울보다 조금 늘리기는 했지만, 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그냥 움직임일 뿐. 아들이 설치해 놓고 간 철봉에도 1분 매달렸다가, 한 번 더 매달렸다가 이만하면 됐다, 하고 내려오고 아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렇게 매달리는 것을 10번 정도씩 한 세트로 하여서 네다섯 세트를 하는 것이 보통의 운동이고, 매달리기뿐만 아니라 어깨 힘으로 턱걸이하듯 몸을 들어 올리려는 동작도 10회씩을 한 세트로 네다섯 세트를 하는 것이 운동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그동안 내가 해왔던 움직임들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또 이제 설명을 들은 대로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 기뻤으나, 아직 매달리지 못하는 나의 결단력 부족을 한탄했다. 그러던 중에 가장 간편하게 아무 준비 없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궁리하다가 달리기가 생각났고, 이미 휴대전화 화면에 숨겨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던 달리기 앱을 찾아, 3회의 달리기를 진행하였다. 왠지 뿌듯하고, 왠지 뭐라도 된 것처럼 어깨도 가벼우면서도 당당하다. 다리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발걸음 또한 당당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움직일까를 궁리하는 모습 또한 대견하고 귀엽고,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마음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 몸이라면 나는 왜 그릇에는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고, 영혼을 채울 어떤 것, 영혼을 맑고 아름답게 할 어떤 것에만 편향된 생각으로 살아왔을까를 생각해 본다. 몸도 마음도 잘 보살피고 살아가기 위한 목표로써 다루어질 수 있는데 그저 도구로써만 여겨왔던 것 같다. 도구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꾸어주고, 들여 보아 주고 보듬어주어야 하는데, 사용하기에만 급급했던 나를 나는 용서하기로 했다. 최근 6년간만 다시 되짚어 보더라도 나는 내가 일군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모델링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것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던 것 같다. 물론 그 과정 안에서 자기사랑이나 자기연민, 자기공감 작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좀 더 진실한 공감, 진실한 마음 표현을 추구하며 좀 더 자유로워지고 좀 더 가벼워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을 읽어야 했고, 그것을 일상에서 해보아야 했고, 두리번거리며 공부할 거리를 찾아야 했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안전하게 실험하는 대화를 해야 했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나는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큰아이에게 세상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너라도 그래야 한다고 주문을 걸어왔다. 그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안전한 사람들과 안전한 대화를 하며 나도 안전한 사람이 되어 함께 웃고 울고(지금도 진행 중)하는 과정을 선물처럼 얼싸안은 나에게 고마워했다. 단지 지금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간을 맞이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봄바람을 느끼는 부드러운 감각, 밤하늘을 쳐다보며 느끼는 아름다움과 살아있는 감각, 달리기할 때 얼굴에서 느껴지는 밤공기의 서늘함 혹은 한낮 공기의 따스함의 감각, 괜히 전력질주를 하고 나서 느껴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는 손바닥의 감각, 쏟아져 나오는 연두를 보는 눈이 느끼는 초록의 감각……. 이제야 지금에 현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설피 느끼게 되는 지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쩔 수 없이 무거움을 만나면서 절망스럽겠지만 동시에 희망에 차거나 기대에 부푸는 것은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어 자라고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움직임을 멈춘 적 없이 뛰고 있는 나의 심장을 내가 감각할 수 있는 지금을 맞이한 그 자체가 희망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연락처를 알지 못하는 친구가 며칠 동안 내가 보낸 카톡을 읽지 않고 1이라는 숫자가 없어지지 않다가 1이 없어지고, 친구에게서 닷새 만에 다시 연락이 오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보내는 나를 감각하는 오래된 새로움을 지금 맞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더 감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퇴근하고 공동체를 위한 식사를 차리고, 그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걸 들으며, 오래된 달리기 신발을 신는다. 나의 아이에게 또 다른 모델링을 보이는, 새로운 엄마가 될 것이다. 내가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이니까.

'소식지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0) 2026.03.25
사진  (0) 2026.02.26
설거지  (0) 2026.01.26
우리 소개서  (1) 2025.12.26
아들의 말  (1) 2025.11.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