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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125

너는 나를 자빠뜨리고야 만다 너는 나를 자빠뜨리고야 만다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얼굴을 잔뜩 구기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해인의 벌거벗은 몸을 안은 날,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이 일은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 9와 10 사이 벽에 용감하게 돌진하는 쪽보다는 영화 나니아 연대기> 주인공들이 숨바꼭질을 하다 숨은 벽장 속에서 뒷걸음치다가 철퍼덕, 눈으로 뒤덮인 마법의 세계에 뒤로 자빠진 쪽에 가까웠다.나는 한동안 진흙탕에 바퀴가 빠진 자동차처럼 굴었다. “왜 이렇게 안 나가!”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전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내면 낼수록 내 발 아래 놓인 웅덩이는 점점 깊어졌다. 나는 이곳에 멈춰서 있는데, 이 세상은 원래 제 속도로 돌아가는 것만.. 2026. 7. 24.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비혼주의자에 출산을 원치 않았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나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어떤 때에는 보호막이 되었지만, 어떤 때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폭력의 굴레였다.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야 부모 사이의 끈질긴 갈등과 싸움의 정체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기 나는 엄마의 입장을 정확히 옹호하지 못하였고, 아빠의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에 분명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아빠는 중학교 때 보은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 대학까지 다녔는데, 종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셋째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더랬다. 아빠는 학업을 하는 동안 미아.. 2026. 6. 25.
아이가 데리고 간 세상 아이가 데리고 간 세상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침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아이는 어느덧 거실과 옷방, 서재, 부엌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로 자랐다. “이게 모야”는 “엄마”, “아빠”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내뱉은 첫 번째 단어였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검지로 허공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이게 모야”를 남발하는 아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보통 한 단어씩 이야기하다가 두 단어를 이어 붙여서 말한다는데. “안녕”을 말하기 시작한 해인이는 사람 외에도 온갖 비인간 존재들을 향해서도, 그리고 (아마도) 보이지 않은 존재를 향해서도 “안녕”을 외치기 시작했다. “녕”이라는 발음이 꽤 어려운데도 곧잘 “안녕”이라 말했다. 해인이 덕분에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 2026.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