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이후 활동을 하게 되면서 종종 장애인운동(투쟁)에 참여하곤 한다. 우선 내가 처음 투쟁에 참여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솔직히 ‘뭘 저렇게까지 하지?’였다. 법을 고의적으로 어기거나 길을 막아 비장애인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들, 때때로 경찰과 대치 속 오가는 고성과 충돌이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경찰들도 그냥 청년 아닌데 무슨 죄냐?”, “비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느냐?” 등의 생각과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하며 규칙에 얽매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자신을 공감, 배려 따위로 속였었다. 그분들이 만들어낸 투쟁의 결과로 내가 오늘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배우게 된 이후에도 불편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
그러다 ebs에서 방영했던 ‘배워서 남줄랩2’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배워서 남줄랩’은 10대-20대 래퍼들에게 인권 및 사회적 주제들에 대해 다양한 강사들이 나와 강의를 진행하고 참여한 래퍼들이 강의에 대한 주제로 가사를 써 공연했던 프로그램이다.
당시 내가 봤던 강의는 김원영 인권 변호사님과 굴러라 구르님이라는 유튜버가 장애인 당사자이자 강사로 출연해 장애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김원영 변호사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강의를 진행하다 이동권 투쟁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동권 투쟁 영상에는 비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막아선 장애인들에게 자신들의 생계를 방해한다고 고성과 욕을 내지르는 반응 또한 담겨있었다. 처음 본 장애인들의 현실과 비장애인들의 공격적 비난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출연진들의 충격을 완화시키고자 김원영 변호사는 저 비난하는 사람들도 그저 생계를 이어가는 시민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캐스퍼라는 래퍼가 “그래도 저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려다 죽지는 않잖아요!”라고 하며 자신은 장애가 있든, 없든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비난과 욕설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 한 대를 묵직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 역시 장애인이면서도 비장애인의 불편을 더 신경 쓰고 오히려 동료 장애인들의 절박한 외침을 오만한 자세로 바라보며 불편해한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부끄러움 속 약간의 아이러니함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내 삶이 고속도로와 같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난 나의 장애로 인해 친부모의 존재도 알지 못한 채 수도원에서 26년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그 동안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과 대학 졸업 이후의 많은 시간을 숨만 쉬며 살기도 했었다. 자립 이후 나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긴 하지만 여전히 나의 노력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들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동료들의 외침이 불편했던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투쟁의 현장에 참여하는데 부담을 느끼고는 한다. 더욱이 장애인운동의 선두에 서 계신 분들처럼 나와 동료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지도 못한다. 하지만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등)누군가의 외침을 비난하며 그로 인한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걱정하는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래도 그 사람들은 (~을 하다) 죽지는 않잖아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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