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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

1년이 지났지만

by 인권연대 숨 2024. 7. 26.
1년이 지났지만
박현경(화가, 교사)

 

지난 718일은 서이초 선생님 순직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청주 소나무길 앞,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검정 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한데 모였다. 식전 행사로 추모 리본 묶기가 진행되었고, 추모 시 낭송에 이어 세 분 선생님의 현장 발언이 있었으며, 추모 춤 공연과 노래패 공연이 이어졌다. 내 양옆의 선생님들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 밖에도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랬다.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서이초 순직 선생님을 비롯해 악성 민원과 교육 활동 침해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어떤 심정이셨을지……. 사실 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겪어 보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으면 싶은,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암담함을 말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녹색병원은 서이초 선생님 순직 사건이 있고 난 20238, ‘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202395일 발표했다. 6,024명이 설문에 참여하고, 조사의 신뢰성을 위해 변별을 통하여 3,505명의 답변을 분석한 이 조사의 결과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교사는 이미 소진[Burnout] 상태라는 것이었다.

학교 내 폭력 경험 항목에서 전체 응답자의 66.3%가 언어폭력을 경험하였고, 신체 위협 및 폭력 경험 18.8%, 성희롱 및 폭력 경험 18.7% 등으로 나왔다. 이는 일반 산업 노동자 대상 근로 환경 조사 결과인 언어폭력 경험 3~6%, 신체 위협 및 폭력 0.5%, 성희롱 및 폭력 경험 0.4%에 비하면 훨씬 높은 수치이다. 정신건강 평가 항목 중 우울 증상에 대해서는 경도의 우울 증상(유력, probable) 24.9%, 심한 우울 증상(확실, definite) 38.3%로 나왔다. 이는, 같은 조사 도구로 실시한 일반 성인 대상 대규모 연구의 심한 우울 증상 유병률 8~10%3~4배에 달하는 비율이다. 또한, 자살 의도와 관련된 질문에서 교사의 16%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4.5%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반인의 자살 생각이 3~7%, 자살 계획이 0.5~2% 수준으로 조사된 점을 감안할 때, 교사들의 상황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황폐해진 마음을 다시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 건강을 위한 개인적 조치들이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노오력으로 마음 건강을 챙길 것을 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하여 이는 개인적 자질이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회구조적 위협 요인이 분명하며 사회·국가적 지원과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현장의 교사들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여건 개선을 지속해서 요구했던 이유는,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여건과 환경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작년 여름, 전국의 수많은 교사들이 토요일마다 검은 점이 되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외친 결과, 교권 보호 5법이 개정되었다. 교권 보호 5법이란 교원지위법, ·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을 말한다. 개정된 사항으로는 민원 처리를 책임지는 주체로 학교장(유치원의 경우 원장)을 명시했고, 교원의 생활지도권(법령과 학칙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권리. 법 개정 전까지는 교사에게 이런 권리가 없었던 것!)을 신설했으며, 정당한(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고, 교원이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당한 경우 교육감이 의견서를 제출하게 하며, 사법 경찰관과 검사는 그 의견서를 참고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들 수 있다.

이 모두가 어렵게 얻어 낸 소중한 성과이나, 학교 현장에서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장 및 원장이 민원 처리를 책임진다고 법률로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교사 개인이, 그것도 주로 담임교사가 민원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교사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저연차 교사들에게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교사 개인의 민원 대응 부담이 경감되었는지에 대한 교육청의 확인은 없었다. 교원의 생활지도권 신설 및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따라 교육 활동 방해 학생에 대한 분리 조치가 각 학교 학칙으로 새로이 정해졌으나, 학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학교 내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 학칙으로 정해진 교육 활동 방해 학생 분리 장소 및 분리 지도 담당자가 합당한지, 해당 조치가 교육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교육청의 확인 역시 없었다.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아직까지 교권 보호 5법 개정 사항들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교육 당국의 안일함과 무성의에 있다.

 

올해 625일 전교조 음성지회는 음성교육지원청과 정책협의회를 했다. 나는 정책협의회 자리에서 교사의 방학 중 일직성 근무를 근절해 달라는 요구를 하며 2023년 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또한,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민원을 대응하게 하는 등 교권 보호 5법 개정 사항들이 음성 관내에 잘 정착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진심을 담아 준비하여 진심을 다해 발언했지만, 음성교육지원청 측의 반응은 무성의했다. 견고한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무력감을 느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관료주의적 행정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서이초 선생님 순직 1주기를 지내며, ‘오만하고 관료주의적인 행정이 변하지 않는 한 교사들의 고통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슬프고도 무서운 생각을 했다. 나의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것이었다고, 현실이 많이 좋아졌다고, 내년쯤 혹은 내후년쯤 고쳐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진심으로.

박현경, 천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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