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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

섬세하고 호쾌한 일꾼, 인권연대 ‘숨’ 이은규 활동가

by 인권연대 숨 2024. 9. 5.

충북대신문 고지민 학생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권연대 숨 활동에 관해 사전조사가 충실하고 이해도가 높아 놀랐습니다. 인터뷰 내용도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오랜만에 즐겁고 편안한 소통 시간이었습니다.

 

섬세하고 호쾌한 일꾼, 인권연대 ‘숨’ 이은규 활동가

 

2학기 개강을 맞아 세상을 향해 용감한 외침을 지속하는 인권 단체들을 응원하고,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관련 활동을 찾아보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를 위해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인권 운동가를 소개하려 한다. 책과 영화를 사랑하는 섬세하고 호쾌한 일꾼, 인권연대 ’(이하 숨)의 이은규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Q. 숨이란 이름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독특하다였는데요, 어떤 뜻을 담았나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권연대는 대부분 해당 지역명을 사용하는데, 인권에는 국경도, 경계도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지역명을 붙이지 않았어요. 숨이란 이름에는 인권이 마치 숨 쉬듯이 자유롭게, 편안하게 모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Q. 약자의 권리를 지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험난한 길일 텐데, 어떻게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으셨나요?

 

저는 86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 1994년 졸업했어요. 8년이 걸렸죠. 그 과정에서 학생 운동을 했고, 그 일로 감옥에도 갔다 왔어요. 그런 대학 생활이다 보니 대학 때부터 활동가의 삶을 꿈꿨고,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계속하고 있네요.

다만 인권 운동 분야를 선택하는 데는 여러 고민이 있었어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인권을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나 그 유족들, 혹은 사회적 약자에게만 필요한 권리로 오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인권은 민주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인권 운동은 곧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일상에 숨 쉬듯 작동하는 것처럼 인권도 그래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죠. 인권 활동가의 길이 평탄하리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고요. 제가 엄청난 능력자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그래도 이런 가치들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막연하게 시작했네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30년이 됐네요. 30여 년의 과정이 나에게 이 길에 대한 확신을 줬고, 큰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Q. 도시 곳곳을 살피며 복지나 관리 실태를 알아보는 도시 쏘댕기기를 매해 진행하시며 전통시장, 이주인 마을, 재개발 지역 등을 둘러보고, 장애인 이동권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음성군도 다녀오신 것으로 압니다. 정말 다양하게 진행하시는데 도시 쏘댕기기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인권 운동은 결국에 사람과 하는 대화잖아요. 억압하는 사람과 세게 부딪히기도 하고, 희생자들, 주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분들에게 시선을 둬야 합니다. ‘은 도시 일상에서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시설물에 대한 접근성에 제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렸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도시 쏘댕기기를 시작했어요. 도시는 휘황찬란하지만, 그 속에서 일상을 사는 개개인의 삶이 그렇지 않잖아요. ‘시민을 위한 도시라고 하지만 아주 추상적이죠. 그걸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접근하지 않는, 그래서 스쳐 가듯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도시에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작은 사람들, 약자들의 삶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이게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쏘댕기며관심을 두게 된 것이 이동권 문제였죠. 작년까지 함께 일꾼으로 활동했던 이구원 활동가가 장애인인데, 같이 움직이다 보니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내 동료와 함께 움직이고 싶을 뿐인데, 이 도시는 너무나 불친절하고, 많은 사람을 배제하는 도시더라고요.

 

Q. 말씀을 들으니 도시 쏘댕기기를 하며 새롭게 발견하신 게 많을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중점을 두시는 건 뭔가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환기예요. 여러 부분을 환기하려는 것이 도시 쏘댕기기의 취지입니다. 우리가 가지 않고 찾아보지 않는 곳,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길을 틀어서 이런 면도 있었구나하고 느끼는 거죠. 예를 들면 장애인이 일상에서 이동하지 못함으로써 누리지 못하는 기본적인 권리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환기하죠. 우암산 둘레길 벚나무를 둘러본 나무 시리즈 같은 경우는 우리가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생명을 마치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되는 구조물 정도로 취급하는 현실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투쟁도 좋지만, 사람들이 한 번쯤 바르게 생각하고, 자신부터 조금씩 변화하며 시작하는 인권 실천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매년 진행하시는 프로그램 중 숨 평화기행도 있던데, 방문 장소에 기지촌도 있더군요. 아무래도 성매매는 사회 풍속에서 지양되는 범죄이고 기지촌도 사라져야 공간으로 인식되는데, 방문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기지촌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우리 사회가 모른 척 덮어두는 문제죠. 제대로 된 위로도 없고, 애도도 없고, 존중과 이해 없이 그저 빨리 처리해야 할 치부로 전락했어요. 기지촌은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외화벌이와 산업화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데도 정부와 사회 차원의 사과도 없이 지워버리고 있어요. 저는 기억의 힘을 믿어요. 기억은 힘이 있으니까 되돌아보고, 다시 찾아가면서 계속 기억하다 보면 언젠가는 위로와 존중과 화해가 남을 겁니다.

 

Q. ‘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참여 모집글보다 후기 위주로 채워진 카테고리가 많아요. 프로그램 홍보를 많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따로 이유가 있을까요?

 

이건 제가 선택한 전략이에요. 홈페이지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전 홍보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요. 개인적인 경험인데, 홍보를 하면 일반적인 회원이나 사람들은 부담을 많이 가져요. 그리고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도 막상 현장에서 보면 참가자가 많지 않아요. 근데 이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게 30여 년 동안 배운 스스로 절망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동안 홍보를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관심을 끌기 위해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행사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 없이 에너지만 썼어요. 참 지쳐요. 내가 오래 가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전략이라고 말하긴 거창하지만, 제 나름대로 지치지 않고 사는 법을 찾아낸 겁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홍보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막연하게 기록하는 거죠.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기자님처럼 누군가가 봐주는 날이 오거든요.

 

Q. 활동가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계속 한 길만 걸으셔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있으셨을까 싶은데 어떠셨어요.

 

아닙니다. 저도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사회운동을 막 접했을 때 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선후배 질서가 되게 강하고, 강압적인 조직문화였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사실 인권은 각 개인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고 복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각기 다른 개인이 모인 게 조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연대할 때 진짜 연대가 아닐까?’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어요. 그러나 나중에 책을 보며 답을 찾았죠. 그렇게 고민하고 답을 찾는 순간순간이 저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고민하며 답을 찾는 저의 터닝 포인트 덕분에 만들어진 게 지금의 입니다.

 

Q. 처음 연락드렸을 때 1인 체제로 운영한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혼자 모든 걸 하려면 엄청 바쁘고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활동가님에게 가장 적합한 운영체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1인 체제로 운영하는 건 재정적 이유가 가장 커요. 지금의 나에게 의구심이 들면 활동가를 시작한 초심을 생각해요. 처음엔 그냥이었어요.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며. 근데 왜 거짓말해?’ ‘, 이거는 아니지 말이 돼?’ 하면서 그냥 시작했어요. 결국 그 그냥은 하고 싶어서였던 거잖아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을 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뭐 어때요. 혼자 모든 걸 하는 게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를 여쭤봐도 될까요?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살아갈 것 같아요. 충북대 교내로 들어오니 도로포장 공사를 하고 있던데, 대부분 학생은 차가 없잖아요. 학생들은 땡볕 속에 그늘 없는 길을 걷는데, 자가용 있는 교수와 직원만을 위해 도로포장을 하는 게 적절한가요. 충북대에도 장애인 학생이 있을 텐데 이들은 땡볕 속에 이동하기가 더 힘들겠죠. 교내에 예산을 많이 확보했다는 현수막이 보이던데, 그들을 위한 복지 비용은 늘어났을까요?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살겠죠.

또 불러만 준다면 어디든 가서 인권 교육을 할 거고요, 적은 인원이라도 인권 소모임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저는 리더보다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어요. 누군가 저와 을 징검다리 삼아 더 나은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이주민 여성이 주체가 되는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예요. 이주민이 만든 조직은 거의 없어요. 좌담회를 열어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스스로 어려움과 부조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면 좋을 것 같아요.

청년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말에 저는 동의해요. 저희 세대가 청년일 때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혀 민주화라는 성취를 이뤘죠. 지금 청년들은 또 다른 이유로 세상과 부딪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꿈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아요. 이뤄질 수 있는지를 떠나서,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세상,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꿈꾸세요. 그 꿈이 모이면 세상이 변합니다.

 

고지민 기자

ziminimin@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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